나르시시스트의 경계선 허물기
한 인간의 자아는, 보이지 않으나 실재하는 경계선으로 둘러싸인 하나의 영토와 같다. 이 경계선은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타인’인지를 규정하며, 생각과 감정, 신체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외부의 부당한 침입으로부터 자기 존재의 존엄성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는, 이 견고해야 할 경계선이 상대의 집요하고 계획적인 침투 앞에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용해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당신의 ‘아니오’라는 단호한 거절은 어느새 망설이는 질문이 되고, 마침내는 힘없는 수락으로 변질되어, 당신이라는 영토의 주권은 소리 없이 그에게 넘어간다.
이것은 어느 한순간의 극적인 항복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작은 전투에서의 미세한 후퇴가 누적된 결과다. 당신은 당신의 ‘아니오’가 힘을 잃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당신의 경계선은 이미 곳곳에서 허물어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은 너무나 교묘하여, 당신은 스스로 영토를 내어주면서도 그것이 친밀감의 증거라고, 혹은 사랑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침투에 대한 사례 : 녹아내리는 방어선
‘민아’ 씨는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니오’는 명확했다. 주말 중 하루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자신의 휴대폰이나 일기장 같은 사적인 영역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관계 초반, 그녀의 연인은 그녀의 이런 원칙들을 기꺼이 존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너의 그런 독립적인 점이 좋아”라고 말했고, 민아 씨는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파트너를 만났다고 믿었다.
침식은 아주 사소한 균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어느 주말, “급한 일이라서”라며 그녀의 혼자만의 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 급한 일이라는 명분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원칙을 잠시 유예했다.
며칠 뒤, 그는 “네 사진이 보고 싶어서”라며 그녀의 휴대폰을 자연스럽게 가져가 사진첩을 구경했다. 사랑스러운 연인의 행동 앞에서, 그녀는 사생활 침해라는 경고등을 스스로 꺼버렸다.
이것들은 경계선을 무너뜨리기 위한 ‘탐침’이었다.
본격적인 공격은 그녀가 자신의 경계선을 다시 주장하려 할 때 시작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시간에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그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지. 너는 내가 그렇게 보고 싶은 것도 이해 못 해? 내가 너무 예민했구나.”
그의 이 말 속에서, 그녀의 정당한 요구는 그에게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둔갑했다. 죄책감은 경계선을 녹이는 가장 강력한 용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민아 씨의 ‘아니오’는 점점 더 많은 부연 설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요구가 결코 그를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길고 감정적인 해명을 해야만 했다.
그녀의 ‘아니오’는 더 이상 단호한 선언이 아니라, 그의 허락을 구하는 조심스러운 질문이 되어갔다. 결국 그녀는 저항을 포기했다. 갈등이 주는 피로감과 죄책감을 감당하는 것보다, 자신의 경계선을 포기하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의 주말은 그의 계획으로 채워졌고, 그녀의 휴대폰은 그의 감시하에 놓였다. 그녀의 영토에는 더 이상 그녀만의 공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경계선 붕괴의 역학: 당신의 저항이 무력화되는 과정
나르시시스트가 당신의 경계선을 체계적으로 허무는 과정은, 그들의 유아적 세계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들에게 당신의 ‘아니오’는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으로 인식된다.
1. 경계의 부재: 분리되지 않은 세계
나르시시스트는 정신적으로 유아기적 단계, 즉 주 양육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던 ‘공생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타인을 자신과 동등한 주권을 가진, 분리된 개별적 존재로 인식하는 데 근본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에게 타인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자아의 연장(extension of self)’에 가깝다.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 당신의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당신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자신의 팔이 자신의 의지를 거역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반란이다.
그들은 당신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자신의 소유여야 할 것을 되찾고 있을 뿐이라고 느낀다.
2. ‘아니오’를 무력화하는 기술들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심리적 기술을 동원한다.
- - 지속적인 탐침과 작은 위반: 그들은 처음부터 큰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하고, ‘사랑’이나 ‘걱정’으로 포장하기 쉬운 작은 위반들을 반복한다. 당신이 이 작은 침범들을 용납할수록, 그들의 침범 수위는 점차 높아지고, 당신의 경계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뒤로 밀려난다.
- - 죄책감과 동정심 유발: 당신의 경계 설정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을 주는지를 과장되게 호소한다. “네가 그렇게 선을 그으니 내가 너무 외로워.”, “너는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이런 말들 앞에서, 공감 능력이 뛰어난 당신은 가해자가 된 듯한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 방어선을 거두어들인다.
- - 가스라이팅을 통한 현실 왜곡: 당신이 경계를 지키려는 행동 자체를 ‘비정상적’이고 ‘문제가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보통 연인들은 이러지 않아. 네가 유별난 거야.”, “너는 너무 개인주의적이야.” 이런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당신은 자신의 정당한 요구가 정말로 이기적이고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 - 처벌로서의 분노와 침묵: 당신이 끝까지 저항할 경우, 그들은 극적인 분노를 터뜨리거나, 며칠씩 지속되는 침묵으로 당신을 벌한다. 이 감정적인 고립과 처벌에 대한 공포는, 당신이 다음번에 저항할 용기를 미리 꺾어버리는 효과적인 학습 기제로 작용한다.
이 모든 기술의 목적은 하나다. 당신의 ‘아니오’가 어떤 힘도 갖지 못하는, 공허한 단어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리하여 당신이라는 영토를 아무런 저항 없이 점령하는 것이다.
영토의 주권을 회복하는 일
당신의 ‘아니오’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죄책감과 그의 교묘한 가스라이팅, 그리고 관계를 유지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퇴적층 아래에 묻혀 있을 뿐이다.
경계선의 붕괴는 당신의 패배가 아니라, 당신이 인간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균등한 심리전의 필연적 결과였다.
따라서 치유는, 이 퇴적층을 걷어내고 묻혀 있던 당신의 ‘아니오’를 다시 발굴해내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당신의 경계선이 침범당했던 모든 순간들을, 친밀감의 표현이 아니라 명백한 ‘월권’ 행위였음을 인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 재건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죄책감을 동반한다. 당신이 다시 경계선을 세우려 할 때, 그는 예전과 같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당신을 비난하고 공격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유발하는 불편한 감정들을 견뎌내고, 당신의 경계선을 지키는 것이 당신의 생존과 존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권리임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당신의 영토에 대한 주권은 타인이 허락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가 선포하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아니오’가 다시금 본래의 단호한 힘을 되찾을 때, 당신의 자아는 비로소 안전한 영토 안에서 온전하게 회복될 수 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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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출간 안내
당신의 이야기는 ‘운명’이 아닌, ‘용기’가 될 거예요.나만 아는 상담소 첫 번째 책, 『운명이라는 착각』 출간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처럼 느껴졌나요?
그 아픔과 혼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관계 전문 심리 상담소, 나만 아는 상담소입니다.
저희는 수많은 마음의 상처 속에서 흩어져 있던 이야기의 조각들을 정성껏 모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정서 학대, 가스라이팅, 교제 폭력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그 고통의 실체를 당신이 쉽게 이해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요.
오랜 기다림 끝에, 그 마음이 드디어 ‘운명이라는 착각’ 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 책은 당신을 탓하던 세상의 목소리 속에서 당신의 편이 되어줄 다정한 친구이자, 아픈 관계를 끊어낼 용기를 주는 단단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그 착각의 안개를 걷고, 당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진정한 길을 찾아 나설 시간입니다. 그 길의 시작에 저희의 책이 작은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해주세요.
“이제, 잠시 눈을 감고 편안하게, 깊은숨을 한 번 크게 내쉬어 보자.
– 운명이라는 착각: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법, 프롤로그 발췌 –
그리고 천천히 아팠던 이야기를 마주할 준비를 해 보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어둡고 긴 혼란의 터널 속에서
마침내 한 줄기 빛처럼 이 책을 발견했다.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 다.
그것은 바로 삶이 정체된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신호이다.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아가는 치유와 성장의 과정을 이제, 바로 지금,
함 께 시작해 보자.삶은 그 누구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것이며,
‘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서 충분히 사랑받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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