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호의 예술의 구석] 재수 없는 예술가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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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호의 예술의 구석] 재수 없는 예술가의 의무

문화매거진 2025-08-30 11:21:30 신고

▲ 재수 없는 예술가의 의무 / 그림: 윤건호
▲ 재수 없는 예술가의 의무 / 그림: 윤건호


[문화매거진=윤건호 작가] 미술계에는 악동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재수 없는 작가’ 1위를 꼽으라면 단연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일 것이다. 그가 ‘재수 없는 작가’로 불리는 이유는 거침없는 발언이나 태도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는 ‘반타블랙 독점 사건’ 때문이다.

빛의 99.965%를 흡수하는 ‘가장 완벽한 블랙’으로 불린 반타블랙은 영국의 서리나노시스템즈가 개발한 물질로, 새로운 안료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블랙과 레드를 시그니처로 삼아온 카푸어는 반타블랙에 주목했고, 투자를 통해 예술 작품에 사용할 목적으로 오직 자신만 사용할 수 있도록 독점 권리를 얻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예술가’라는 점에서 이는 굉장히 치졸한 행위였다. 안료를 독점함으로써 그는 작품 경쟁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고, 무수한 잠재력을 가진 안료가 다른 예술가들의 손을 통해 새로운 표현으로 창출될 미술사적 기회를 가로채버렸기 때문이다.

카푸어의 치졸함에 예술가들은 분노했다. 그 분노에 맞서 영국의 예술가 스튜어트 셈플은 ‘가장 핑크다운 핑크’를 개발하며 “이 안료는 아니쉬 카푸어만 빼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다”며 맞불을 놓았다. 이에 카푸어가 핑크 안료를 중지에 찍어 SNS에 올리며 셈플에게 손가락 욕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이것은 카푸어의 전략이자 방식이다. 그는 논란 많은 행위로 성공적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고, 사람들은 세상에 가장 완벽한 블랙이 탄생했다는 사실도 그의 이름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슈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관찰자의 시선이 되기도 하는 ‘행동하는 예술가’이다.

“시선으로 시선을 이끌고, 시선으로 행동과 이념을 이끄는 것.” 이것이 카푸어의, 그리고 예술가가 짊어진 의무의 무게인 것이다.

최근 그는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협력하여 북해에 위치한 시추 플랫폼(Shell)에 작품을 설치했다. 바다와 기후의 상처를 표현하는 퍼포먼스 작품 ‘BUTCHERED’는 피와 같은 붉은 액체를 뿌려, 마치 시추 플랫폼이 실시간으로 지구에 상처를 내는 듯한 잔혹한 장면을 연출했다. 카푸어는 이 작품을 두고 “정치적 행동과 현대 미술의 결합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말했다.

마네가 ‘올랭피아’ 단 한 점의 그림으로 당대의 뒤틀린 인식을 강렬하게 비판하고 대중의 시선에 이슈를 올려놓았던 것처럼, 게릴라 걸스가 그 마네의 작품을 활용해 여성 인권의 맹점을 사회에 펼치고, 풍자로 이목을 끌었던 것처럼 미술은 늘 이슈의 선두에 서 있었다. 정치적 갈등, 사회적 이슈를 동등한 시선에 띄우는 것, 그것이 예술이 가장 잘하는 것이고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소리 없이 날카롭게 세상을 시사할 수 있는 힘이다.

카푸어의 방식이 때로는 유치하고 치사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이 그를 ‘현대’라는 시대에 살아 숨 쉬는 작가로 만들고 있다. 복잡한 현대를 바라보고 고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논쟁과 이슈 앞에서 겁을 먹기 쉽다. 그럼에도 순수한 이목을 이끌고, 표현으로 행하고, 관찰해야 한다. 예술만이 할 수 있고, 이 시대에 행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예술가로서, 꿈을 향해 달려가고 때로 재수가 없더라도 의무의 무게를 짊어진 이를 세상은 좀 더 너그러이 바라볼 것이다. 결국, 예술가는 그렇게 시대를 이끌어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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