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개발업자로 부를 쌓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높은 금리를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부동산 경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변수가 금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연방준비제도(연준)에 기준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곤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순순히 금리를 낮추지 않는 파월 연준 의장을 지칭해 때로는 '멍청이'(numbskull)로, 때로는 '심하게 무능한 이'(grossly incompetent), '형편없는 사람'(horrible)으로 불렀다.
역설적인 사실은 트럼프의 정책이 연준의 금리인하를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올해 7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하면서 6월과 같은 수치로 나왔다.
물가 쇼크는 생산자물가지수로부터 나왔는데, 7월 수치가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하면서 시장 컨센서스(기대치) 2.5%와 6월의 2.4%를 훌쩍 뛰어넘었다. 유통서비스 물가가 크게 상승했고, 새롭게 부과되는 관세에 대한 노출도가 큰 내구 소비재와 자본재 가격 오름폭도 컸다.
관세 부과는 공급 측면에서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수요 측면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조장할 수 있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 규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는 '위장 보수주의자'다. 외견상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강화하는 보수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감세가 시행될 예정이다. 경제적 보수주의자의 철학에 맞는 정책이다. 다만 세금을 깎아주는 대신, 정부 지출을 축소하면서 작은 정부로 이행해야 경제적 보수주의 철학의 진정한 구현일 텐데, 트럼프는 재정지출을 줄일 생각이 없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인 2025년 1분기와 2분기 GDP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는 각각 6.9%와 6.3%에 달한다. 큰 정부를 주장했던 바이든 행정부만큼의 재정적자 규모다.
생산자물가지수 쇼크 이후 올해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고 있다. 여기에 8월 20일 공개된 7월 FOMC 회의록에서 금리인하에 찬성하는 비둘기파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는 점도 9월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를 낮춘다.
연방기금금리 선물로 본 9월 금리인하 확률은 8월 중순까지 100%였지만 8월 22일 현재 72%까지 하락했다. 8월 들어 나타났던 한국 증시의 조정세도 '미국 금리인하 기대 후퇴→ 달러 강세→외국인 순매도'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9월 FOMC에서 금리가 동결되더라도 4분기 중에는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관세 효과를 무시하기 힘들다. 관세의 영향으로 높아진 수입품 가격이 수요를 위축시키면 경기 후퇴가 나타날 것이고, 미국인들이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 닥칠 것이다.
향후 1년 정도로 보면 미국 경기의 둔화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인플레이션 역시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장기금리의 영향으로 사후적인 경기 침체를 예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의도하는 것으로 보이는 달러 약세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연준의 정책이 완화적으로 선회해야 한다.
얼마 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을 촉구했다. 자국 중앙은행에 대한 금리조정 요구도 선을 넘는 일(베선트는 9월 FOMC에서 0.50% 포인트의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발언을 내놨다)이지만, 다른 나라 중앙은행에 금리인상을 요구하는 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일본의 금리인상을 요구한 건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적극적 의사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경제 관료들은 늘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변수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환율은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았다.
1985년 플라자 합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미국이 직면했던 무역수지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동맹국이었던 일본과 서독을 압박해 엔화와 마르크화의 인위적 절상(달러 약세)을 유도했다.
반대로 2013년 이후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엔화 약세(달러 강세)를 매개로 진행됐다. 당시 미국은 엔화 약세를 사실상 묵인했다. 국제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고 있던 한국·중국 등은 인위적 엔화 약세가 주변국들을 힘들게 만드는 '근린 궁핍화 정책'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한 일본의 내정 문제'라며 엔화 약세를 사실상 용인했다.
9월 FOMC에서의 금리인하 기대 후퇴가 달러 강세와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에서의 외국인 순매도세를 불러왔지만 달러 약세와 비달러자산 선호 강화의 흐름은 곧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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