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열어두며 통화정책 기조 변화의 신호를 보냈다. 노동시장의 둔화와 물가 압력의 변화가 맞물린 ‘위험의 균형’ 속에서, 연준이 이르면 다음 달부터 정책 완화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가 금융시장 전반에 확산하고 있다.
◇잭슨홀 발언, 통화정책 변화의 분수령
파월 의장은 22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잭슨홀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실업률과 다른 노동시장 지표의 안정성은 정책 기조 변화를 고려할 때 신중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며 “정책이 제약적 수준에 있는 상황에서, 변화하는 위험의 균형은 정책 조정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현행 4.25~4.50%의 기준금리를 하향 조정할 가능성을 직접 시사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상반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1.2%로 지난해 같은 기간(2.5%) 대비 둔화된 가운데, 고용과 물가라는 두 축의 위험 요인이 균형을 이루는 국면에서 정책 방향을 선회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묘한 균형”…노동시장 둔화 진단
파월 의장은 현재 경제 상황을 “인플레이션 위험은 상방, 고용 위험은 하방으로 기울어진 도전적 국면”으로 규정했다. 이어 “노동 공급과 수요가 모두 뚜렷하게 둔화하면서 ‘묘한 종류의 균형(curious kind of balance)’이 형성됐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지난 5~7월 미국의 일자리 증가 규모는 시장 예상을 큰 폭으로 밑돌았다. 다만 7월 실업률은 4.2%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쳐 여전히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경기 둔화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제한 정책이 노동 공급을 위축시킨 결과라는 평가다.
◇관세와 물가, 단기 충격이냐 장기 압력이냐
물가 측면에서는 관세 정책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월 의장은 “관세가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효과는 이제 분명해졌다”며 “향후 몇 달간 이 영향이 축적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그는 관세 인상이 “단기적·일회성 충격”에 그칠 수도 있고, 반대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촉발할 수도 있다며 불확실성을 남겼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기조가 연준의 정책 판단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관세가 단순한 물가 상승 요인으로 끝날지, 장기적 비용 인상으로 이어질지가 향후 금리 결정의 중요한 갈림길이 될 전망이다.
◇금융시장 즉각 반응…인하 기대 급등
파월 의장의 발언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9월 FOMC에서 25bp(0.25%포인트) 인하 가능성에 대한 시장 전망치는 75%에서 85~91%로 급등했다. 뉴욕 증시는 상승 마감했고, 미국 국채 수익률은 하락했으며, 달러화 약세와 함께 원·달러 환율은 138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9월뿐 아니라 10월과 12월에도 추가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글로벌 채권 운용사 PIMCO의 리처드 클래리다는 “연준이 기존보다 명백히 온건한 톤으로 돌아섰다”고 평가했고, 노무라의 데이비드 세이프는 “25bp 인하가 기본 시나리오지만, 고용지표가 더 약화될 경우 50bp 인하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정책 프레임워크 전환 가능성
이번 발언은 단순히 단기 금리 인하 신호를 넘어, 연준의 통화정책 프레임워크 전환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2020년 도입된 ‘유연한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Flexible Average Inflation Targeting·FAIT)’가 인플레이션과 고용 사이의 긴장 관계를 효과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연준이 보다 현실적이고 탄력적인 정책 설계로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통화정책은 정해진 궤도에 있는 것이 아니며, FOMC 위원들은 경제 전망과 위험 균형을 평가해 그 함의에 근거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고정된 정책 원칙보다 데이터에 기반한 유연한 대응을 강조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완화의 문턱 낮아진 연준
파월 의장의 이번 잭슨홀 발언은 연준의 정책 기조가 긴축에서 완화로 넘어가는 문턱이 낮아졌음을 보여준다. 노동시장 둔화와 관세에 따른 물가 압력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연준은 더 이상 단일 목표가 아닌 균형적 접근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안도감을 줄 수 있지만, 관세의 장기적 인플레이션 효과와 노동 공급 제약이라는 구조적 위험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에서 정책 불확실성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연준의 9월 FOMC는 ‘첫 인하의 시점’이자 ‘향후 완화 속도’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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