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앙리 루소의 편지②에 이어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나는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림을 진지하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는 나 또한 ‘너무 늦었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지요. 예술학교에 다닌 적도, 유명한 스승을 둔 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나 스스로에게 “이게 내가 그릴 수 있는 전부야”라고 믿으며 매일 선을 긋고 색을 칠했습니다.
내 그림이 처음 세상에 나갔을 때 사람들은 웃었습니다. 1891년 어느 기자는 “루소는 발로 그림을 그린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원근법과 비례를 모른다며 조롱했죠. 화가 카미유 피사로는 “감정이 훈련을 대신한다”고 했고, 비평가 펠릭스 발로통은 내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을 칭찬하는 척하면서도 그 속에 거만함을 숨겨 놓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나는 그 모든 반응을 즐겼습니다.
비웃음이든 억지 칭찬이든 그것은 곧 ‘관심’이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내가 뭘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나는 나의 ‘순진함’을 의도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림에 불필요한 건 빼 버렸죠. 세상의 규칙, 미술학교에서 가르치는 법칙, 그리고 이른바 ‘올바른’ 원근법 같은 것들 말입니다. 대신 감정을 넣었습니다. 감정이야말로 내가 가진 유일한 사치품이었으니까요.
어떤 일에도 나는 붓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이 바로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결코 빼앗기지 않는 나만의 것이었습니다.
1893년, 나는 세관직을 관두었습니다. 그때 나는 혼자였습니다. 나의 첫 번째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계를 보장해 줄 사람도, 내 선택을 응원해 줄 동반자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미쳤다고 했습니다.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아무도 사 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니 당연한 반응이었겠죠.
하지만 나는 알았습니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며, 그 한 번의 삶에서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외면한다면 나는 평생 후회하리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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