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건축가 김원의 건축 이야기(9) 보편적 건축에 관한 소고-③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K-VIBE] 건축가 김원의 건축 이야기(9) 보편적 건축에 관한 소고-③

연합뉴스 2025-08-19 11:34:59 신고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원 건축가 김원 건축가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제공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 폰티(Gio Ponti, 1891~1979, 건축, 디자인, 출판 등 전방위 예술인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의 '종교와 건축'을 통해 건축가가 각 사람이 삶에서 자기 개성을 펼치려는 것을 무시해 삶(지어진 건물에 들어가 사는 삶)을 정의하고 규제하려 드는 문제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종교 건축은 종교를 위한 건축이지 결코 그 건축이 종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건축가가 건물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 종교적 감흥을 유발시키려 하고, 하느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게끔 만들려고 할 때 항상 사람들이 건축가가 의도한 그런 식으로 유도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지오 폰티 회고전 포스터 지오 폰티 회고전 포스터

[파리 장식 미술관 (Musee des arts decoratifs) 홈페이지 캡처]

혹시 있을 수 있었던 감흥은 건축적 감흥이 아니라 신앙적인 어떤 것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번 반복되지 않는다.

필자가 한강 성당을 설계할 때 경험한 일이다.

어느 날 아침 공사 중인 지하실에서 그것도 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신도가 모여 아침 미사를 보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그렇게 경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심이지 건물에서 오는 감흥 때문이 아니었다. 인위적 연출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교만이었다. 특별히 종교 건축에 있어서 건축가는 숨어 있어야 한다.

한강 성당 한강 성당

[천주교 한강 성당 홈페이지 캡처]

건축가가 어떤 의도된 감동으로 사람들을 유도해서는 안 된다. 말년의 마티스가 남프랑스에 은퇴해 있을 때, 근처 수도원에서 주문받은 스테인드 글라스화를 놓고 대단히 고민했던 이유도 같은 것이었다. 그 자신의 종교적 해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게 될 것을 염려했던 때문이다.

당시에 나는 "이 성당 건축은 이래야 한다"고 어디엔가 그 이치가 꼭 쓰여 있을 것 같이 느꼈다. 그래서 건축가는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 그 이치를 깨달아야 하고 그것에 맞게 건물을 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예술가를 자칭하기 좋아하는 일부 건축가는 건축을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이다" 혹은 "무언가 창조한다"고 즐겨 표현하는데 그것은 정말 난센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건축이건 그것이 꼭 거기에 그렇게 있어야 했던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어야 한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발명'일 수가 없다. 설사 그것이 발명이라 할지라도 발명의 모든 근원은 어디엔가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해 내는 데 불과한 것이다.

내가 가끔 애독하는 책 중의 하나인 '훈민정음' 서문을 통해 같은 이야기를 하겠다. '훈민정음'의 해례(解例)나 서문을 통해서 보면, 세종대왕을 두고 정인지(鄭隣趾)를 비롯한 신하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훈민정음을 만들어 놓고 보니 참 좋았다. 하늘의 이치를 영군(英君)이 알아내어 이를 재현시키니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지게 돼있던 것'이 이뤄졌다."

하늘의 이치를 따라 순리적으로 만든 훈민정음은 기능은 물론 아름다움을 갖춘 과학성 있는 조화로운 글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 말에 감동하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것이 보편성의 원리 위에 서서 어떤 독창적이고 훌륭한 일이 이루어진 좋은 예다. 이렇게 볼 때 건축가는 어느 면의 전문가라고 말할 수도 없다.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기보다는 제네럴리스트(generalist)라고 해야 한다. 전문가란 바로 그 사람이 아니고는 다른 누구도 그 사람의 일을 대신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데 건축은 그렇지 않다.

집을 여러 번 고쳐 짓고 새로 짓고 하신 아주머니들이 "저는 잘 모르지만, 몇 번 집 짓고 나니까 전문가가 다 됐어요"고 말한다. 아주머니들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대학, 대학원에서 전문적(?)이라고 배운 내용들이 사실 별것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가장 생활에 충실한 것, 인간 감정에 충실한 것, 즉 자연의 요구에 충실한 것들을 배웠다.

그것을 가지고 건축가가 전문가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건축가는 제네럴리스트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에 건축은 보편성이 우선해야 한다는 유추가 더욱 가능한 것이다.

인공 환경에 관해(전적으로 신임하는 건 아니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 몸에 가장 가깝게 접하는 가구를 살펴보면, 수천수만 가지의 의자가 있는데, 우선 가장 간단히 말해 '앉아 편해야 한다'는 기능을 지닌다. 앉아야 하는 기능에서부터 시작해 각종의 디자인이 있게 되는데 아무리 기발하고 독창적일지라도 "의자는 의자이어야 한다"는 것만은 꼭 지켜야 의자가 된다.

이것이 의자의 보편성이다.

건축에 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봐야 한다. 나는 유치원 설계도 한 적이 있다. 유치원과 관련한 우리가 가진 법규상 불가능할 수도있겠지만 유치원만은 어린이들의 행동 스케일에 맞춰야 한다고 느꼈다.

가구에서부터 천정 높이, 문폭, 화장실, 복도 등이 모두 어린이 스케일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보편성을 생각하면 무리가 있다. 유치원은 어린이뿐 아니라 보모, 선생님, 관리인, 참관할 부모님들도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넣어야 하는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 경우 좋은 유치원이 되기 위한 더 보편적 해결은 두 가지를 다 충족시키는 것이 될 터인데 둘 다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어느 한쪽을 택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린이 쪽을 택했다. 그것이 더 중요하고 그 외의 것들은 부차적이라고 봤다. 이 선택이 건축가의 개성적 판단이다.

'보편성'이라는 말을 설계 과정과 함께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건축가가 설계를 위해 한 과제를 받으면, 우선 흔한 과정(process)을 거쳐 설계를 시작한다. 대지 조건에서부터 건축주의 요구, 기능별 분석 등등을 해 나아가면서 어느 경우에서나 어떤 원칙적 요구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건축가는 그 프로그램 과정에서도 독창적인 제안을 내놓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건물이 설계될 대지에 가서 처음 받은 인상이 건물의 설계 과정 끝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대지로부터 받는 첫인상이란, 대지에서 느낀 선입견이나 얄팍한 감상이라기보다는 대지의 필연적 요구를 받아들이려는 자세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대지의 속성을 경사 여부, 크기와 평수, 주변 경관 등의 물리적 요인으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읽어야 한다. 또한 구조, 설비, 전기 등의 요구 조건을 읽고 그 해결 방법들을 보편성 위에서 찾아야 한다.

이때 한 건축가가 거기 숨은 요구 조건을 어디까지 읽을 수 있는가는 그 사람의 능력이다.

남미 페루에 가면 세계적 건축 유적인 마추픽추(Machu Picchu)가 있다. 오래전 마추픽추를 만들고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생활 전체를 종교의식처럼 살지 않았을까.

마추픽추 마추픽추

[연합뉴스 자료사진]

돌의 세공은 기도하듯 다듬지 않고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들은 천상의 도시를 꿈꿨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곳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건축가였다고 보면, 건축가와 건축사가 아닌 것은 구분될 필요가 없다. (4편에서 계속)

김원 건축가

▲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광화문시민위원회 위원장.

* 더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