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충남도·청양군 소통 부재로 지난 1년간 불신만 깊어져
도지사 "청양군 추경 예산 삭감"…청양군수 "주민 무시하고 겁박하는 것"
(홍성·청양=연합뉴스) 한종구 양영석 기자 = 정부의 기후대응댐 후보지로 선정된 충남 청양·부여 지천댐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수몰 예정지 주민 사이의 찬반 대립이 이제는 충남도와 청양군이 정면으로 맞서는 '관관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초기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이 빠진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면서 불신이 누적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댐 건설 계획 발표 1년째 갈등 또 갈등
지천댐은 지난해 7월 환경부가 발표한 '기후대응댐' 후보지 14곳 가운데 하나다.
극한 홍수나 가뭄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미래 물관리 수요를 맞추려면 댐 건설을 미룰 수 없다는 게 당시 환경부의 입장이다.
충남은 다른 지역과 달리 사전 협의나 주민 의견 수렴 절차 없이 후보지에 포함됐다.
발표 직후 수몰 예정지 주민들 사이에 찬반 단체가 각각 구성되면서 갈등이 일었다.
인구 2만9천여명에 불과하고 노인 비중이 40%에 달하는 조용한 시골이 찬성과 반대로 갈라졌고, 설득과 토론 대신 집회와 성명만이 오갔다.
민관 대립 역시 좁혀지지 않아 주민설명회가 파행을 거듭했다.
환경부는 이를 잠정 보류한다고 했지만 이후 공청회에서 지천댐 계획은 다시 등장했다.
찬반 단체는 각각 댐 건설에 찬성하는 충남도와 입장 표명을 유보하는 청양군을 강하게 압박했다.
충남도는 주민협의체를 구성하고 기본구상 용역에 착수하는 등 공식 절차를 진행했지만, 반대 측은 빠지고 찬성 측만 참여하면서 형평성 결여 논란 또한 불거졌다.
◇ "미룰 수 없는 사업" vs "주민 공감 없어"
충남도는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 대응을 위해 지천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업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서남부권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입장이다.
홍수조절 능력 1천900만t, 연간 용수 공급 5천500만t을 확보해 기후변화와 산업용수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계산이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라거나 "언제까지 반대 측에 끌려다닐 것이냐"라며 댐 건설에 대한 강경론을 굽히지 않았다.
찬성 주민들로 구성된 지천댐 추진위원회도 환경부와 충남도를 잇달아 방문해 조속한 사업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지천댐 반대 대책위원회는 댐을 건설하더라도 실제 홍수 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천 하류의 침수는 금강 수위 상승 영향이 크고, 댐이 이를 막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특히 대통령과 환경부 장관이 밝힌 '주민 반대 시 미추진' 원칙을 들어 사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신규 댐 건설을 중단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주민 여론은 댐 건설 찬성 측이 우세하다.
지역 일간지인 대전일보·중도일보·충청투데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청양·부여 주민은 댐 건설에 대해 찬성 62.9%, 반대 37.1%였다
하지만 협의체 구성부터 반대 측이 배제된 구조 때문에 공정한 여론 형성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 주민공감대 형성 부재…소통과 신뢰 회복이 열쇠
최근 갈등은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의 충돌로 번졌다.
김 지사는 지난 11일 열린 실·국·원장 회의에서 "김 군수는 미래를 위해 (지천댐이) 꼭 필요하다며,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놓고 이렇게 뭉개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청양군의 추가경정예산을 다 빼라"고 지시했다.
김 군수가 지천댐 건설에 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로 했으나, 정권이 바뀌자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는 게 김 지사의 주장이다.
이에 김 군수가 발끈했다.
김 군수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주민 의견을 들어 찬반을 결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뒤 "댐 건설에 대한 입장 표명 지연을 이유로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것은 예산의 독립성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예산을 볼모로 청양군민을 무시하고 겁박하는 것으로 분노와 허탈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어떻게 해서든 정책 목적을 달성하면 된다는 개발 연대의 성과지상주의 사고"라고 김 지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지천댐 논란은 단순한 물관리 사업을 넘어 지방정부 간, 주민 간, 그리고 지방정부와 주민 간 신뢰의 문제로 번졌다.
첫 단추였던 후보지 선정 단계에서 소통이 빠졌고 이후 절차에서도 형평성이 흔들렸다는 인식이 갈등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충남도는 여전히 '충남 100년 먹거리'를 강조하지만, 정책이 힘을 얻으려면 과학적 타당성과 주민 공감대라는 두 축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권오철 중부대 교수는 "대규모 개발 사업은 기술적 타당성만큼이나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며 "초기부터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계획도 지역 갈등으로 발목 잡히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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