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에 있는 맛집을 드나드는 남자의 후기다. 유명한 곳도, 숨겨진 곳도 간다. 재료와 요리가 탁월하면 선별한다. 주인장이 친절하면 플러스다. 내돈내산이며 가끔 술도 곁들인다. 요즘처럼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진 입에는 정성이 담긴 음식이 들어가야 정화된다고 믿는다. [편집자 주] |
무더운 여름, 한미 관세 협상이 연일 화제인 날 미국식 중화요리집 '유박사 차이니즈'에 들어섰다. 중국 음식인지 미국 음식인지 애매한 화교의 음식. 한국에서 탄생한 짜장면·짬뽕과 같은 위치의 종류다.
이 식당은 평택 미군 부대 앞에 본점을 차린 후 체인점을 늘렸다. 미국인을 상대로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면서 한국인 입맛도 노렸다. 미국에는 이런 중화요리 패스트푸드점이 많지만 한국에는 희소하다. 특별히 유행을 타지는 않았는데 아는 한국인은 찾는다.
한 끼에 많은 메뉴를 맛보기 위해 1인 플레이트에 각종 음식을 추가했다. 오렌지 치킨, 제너럴 쏘 치킨, 쿵파오 치킨, 차오면, 치즈완탕, 계란탕, 허니월넛 샐러드 등을 다 주문하니 2인분은 됐다. 오렌지 치킨은 중국계 미국인이 1987년 개발했다. 주황색 소스 범벅인 닭튀김 덩어리다.
첫입을 베어 무니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닭살이 느껴졌다. 닭강정과 비슷하면서도 소스가 달라 신선한 풍미다. 오렌지의 상큼함이 설탕의 단맛, 칠리의 매콤함과 절묘하게 균형을 이뤘다. 사실 치킨 자체가 미국에서 유래한 음식이라 근본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태양빛이 내리쬐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는 세계적인 오렌지 생산지다. 중국계 미국인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 닭고기와 자연스럽게 결합된 것이다. 미국은 곡물과 오렌지에 자부심이 있는 농산물 강국임을 떠올린다.
그다음은 제너럴 쏘 치킨이다. 매운 치킨인데 미국인 입맛에 맞게 단맛이 더 강조됐다. 중국 본토나 한국에는 없는 맛이지만 거부감이 없다. 튀김옷이 얇은 쿵파오 치킨은 쫄깃하다. 매콤하면서도 캐슈넛이나 땅콩이 들어가는 요리라 새롭다. 밥을 시켰으면 비벼 먹어도 될만하다. 계란탕은 원래 아는 맛으로 이 중국 요리에도 어울린다.
비빔국수처럼 보이는 차오면 역시 정통 중식이라기보단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중식'의 표본이었다. 익숙한 면발에 양배추와 당근이 기름기 적당한 소스와 버무려져 있다. 너무 짜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은 맛이다. 테이크아웃하면 네모난 종이 박스에 담긴다. 미국 영화,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차오면을 집이나 사무실에서 포크로 후루룩 먹는 장면이 흔히 나온다.
차오면의 담백함이 입을 중화시켜주고, 탄수화물이 찼을 때쯤 다시 오렌지 치킨이 미각을 깨운다. 여기에 차가운 콜라까지 더해지면 단짠단짠의 사이클이 완성된다. 치즈완탕은 생김새가 포춘쿠키와 비슷한데 안에 크림치즈가 들어갔다. 소스에 찍어 먹으면 적당한 술안주로 삼기 좋다. 허니월넛 샐러드를 먹으니 또 다른 견과류가 입안에 찾아온다. 미국은 견과류도 풍부하게 생산되는 나라다.
이 퓨전 음식을 씹으면서 문득 생각했다. 이게 바로 역사가 긴 동양에서 유래해 역사가 짧은 미국 땅에서 개발된 '아메리칸드림'이구나. 인종차별에 시달린 중국 이민자들의 애환이 담겼다.
그들이 미국인 입맛에 맞춰 계속 개조한 요리가 완전히 독립된 정체성을 가진 장르로 성공했다. 1970년대 무술을 모르는 미국인 앞에서 쿵후에 기반한 액션을 보여 스타가 된 이소룡, 성룡처럼 말이다. 태권도가 미국에서 인기를 얻은 것도 원조 K-컬처의 진출이다.
'아메리칸 차이니즈'라는 고유한 서민 음식 종류의 생성, 생각보다 미국에서 대중적이다. 200여년에 불과한 미국 역사에서 고유의 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기에 새로 받아들인 문물이다.
비만인이 많은 미국 음식이 원래 그렇다. 복잡한 향신료나 섬세한 조리법 같은 건 필요 없다. 햄버거 같이 간단하다. 그냥 단순무식하게 맛있는, 전통보다는 산업화로 발달된 대량 생산의 맛. 그래도 중화요리는 땀과 노력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이번 관세 협상에서 미국산 농산물 개방을 두고 한미 정부 간 발표가 다르다. 쌀·소고기 수입을 막았지만 농산물 검역절차 개선이 남았다. 후속 협의에서 한국 측은 농촌 경제를 지키기 위해 밀리면 안 될 것이다. 얄미운 코쟁이 앞에서 당당함이 요구된다. 우리는 수천년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 민족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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