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윤나애 작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아프리카코끼리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종종 되묻는다. “코끼리면 코끼리지, 왜 굳이 아프리카코끼리야?”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내 눈에 아프리카코끼리가 더 멋지고 더 귀엽게 보이기 때문이다. 외모가 내 취향이라는 아주 단순한 이유다.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는 확실히 생김새가 다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코끼리와 매머드만큼 다르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내 아이들은 그런 차이를 재미있어하며 종종 매머드를 가리키며 코끼리라고 장난을 친다.
어느 날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 그리고 매머드의 차이를 확실하게 설명해 주기 위해 검색을 하던 중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매머드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수천 년 전 유명을 달리한 매머드는 피부와 털, 심지어 위 속 내용물까지 꽤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과학자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발견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는 흥미로운 일이지만 ‘모든 발견이 과연 긍정적인 것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존재는 오래전 죽었고 얼음 속에 갇힌 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저 조용히 묻혀있던 기록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열어봐도 괜찮을까?
영구동토(Permafrost)란 2년 이상 얼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땅을 말한다.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 그린란드, 고산지대 등지에 퍼져있으며 그 안에는 수천 년 전 생물의 유해, 미생물, 고대바이러스 그리고 방대한 양의 메탄과 산소가 잠들어있다. 오랫동안 잠잠했던 이 땅이 최근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화석연료를 태우고 산림을 파괴하고 과잉소비를 일삼았다. 그 결과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그 온기는 영구동토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이제 그 땅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녹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잠들어있는 것들이 깨어나고 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영구동토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하고 있다. 긴 시간 얼음 아래 잠들어있던 고대 미생물과 바이러스가 튀어나올 가능성을 두고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자”라 불리는 것이다. 2013년 시베리아 동토층에서 발견된 고대바이러스에는 실제로 ‘판도라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이름에는 인간의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담겨있다. 마치 어떤것이 담겨있는지 모르고 세상에 재앙을 가져온 판도라와 그녀의 상자처럼 말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판도라(Pandora, 1896)’는 그리스신화 속 신들이 만든 완벽한 여인 판도라를 묘사한 작품이다. 신화 속 그녀는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를 받았지만 결국 그 상자를 열고 만다. 그 안에서 튀어 나온 것은 고통, 질병, 증오, 죽음 같은 온갖 재앙들이었다. 세상은 균열을 맞았고 상자 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단 하나, 희망만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판도라는 오랫동안 유혹이 약하거나 지혜롭지 못한 존재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워터하우스가 그린 판도라는 조금 다르다. 워터하우스의 판도라는 그 어떤 음모도 없는 얼굴로 고개를 약간 숙이며 조심스럽게 상자를 들여다본다. 그 눈엔 공포보다도 순수한 인간의 호기심과 긴장, 무지에서 비롯된 숙명성이 담겨있다. 인간세계에 재앙을 가지고 온건 특정한 악인이 아니라 바로 평범한 인간 일반의 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림 속 판도라의 손끝은 우리의 손끝과도 닮아있다. 특별히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파괴를 원했던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조금씩 이 땅을 녹이고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발견 그 자체가 아니다. 발견되지 말았어야 할 것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과 뒤늦은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언가를 계속 열고 있다는 현실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니다. 자연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다. 그리고 그 경고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상자 속 마지막에 남은 희망의 불빛은 아직 꺼지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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