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권선미 작가] 지난해 칸예 웨스트가 한국 고양시에서 했던 리스닝 파티가 갑자기 콘서트가 되면서 인터넷이 한동안 난리가 났었다. 나는 칸예가 누구인지 평소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저 ‘미국의 유명하지만, 너무 유명하고 대단한 나머지 정신이 이상해서 매번 부인에게 이상한 옷을 입혀 파파라치에 찍히는 걸 좋아하는, 나치와 관련한 실언을 한(칸예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정말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에서 이루어진 그의 콘서트 후 국내 인터넷에서는 황홀했다던 후기들이 잔뜩 올라오기 시작했고, ‘ye수’ 혹은 ‘칸쪽이’ 등 온갖 애칭과 높임말이 그를 수식했다. 그것들은 내가 알던 이상한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나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 걸까 싶어서(마치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던 동네 맛집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면 호기심이 동해 꼭 먹어보고 싶은 것처럼) 그의 콘서트 영상과 그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찾아보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가 멀쩡했던 시절들이 존재했었고, 내가 어렴풋이 들었던 유명한 노래들이 그의 노래임을 알았다. 그는 물론 알다시피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인데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디자이너이기도 했고, 인터뷰 영상들 속에서는 말도 멋지게 잘했다. 그런 한편으로 할 말 안 할 말 안 가리는 ‘또라이’이기도 했다.
왜 유명한 아티스트들은 반쯤 미쳐있는 걸까? 아니면 미쳐있어서 유명해지는 걸까? 너무나 유명하고 대단해서 미쳐버린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는 또다시 나에게 이렇게 소비된다.
그 공연은 내로라하는 국내의 유명인들도 여럿 관람을 했다고 알려졌는데, 찾아보니 칸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뮤지션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좋아하는 가수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든 작품들이 또 다른 팬들에게 영향을 줄 테지.
리스닝 파티의 영상 속 수많은 사람이 칸예의 노래를 따라 불렀고, 칸예는 무슨 바람이 났는지 4년 만에 마이크를 잡고 라이브를 했단다. 세상에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나만 해도 내 그림을 보고 좋아해 주는 한두 명만 만나도 가슴이 벅차오르곤 하는데, 그 많은 관객이 칸예가 만든 노래를 함께 불러주었으니, 아마 그의 가슴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벅차오르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을지도...
내가 빚은 무언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빚어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가 아무리 미친 짓을 하고 다니더라도, 그의 작품만은 그와 별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예술가에게 있어 자신의 작품이 이토록 많은 타인의 사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않은가.
예술가의 작품을 먹고 자란 관객들은 어떻게 보면 예술가의 취향과 감성을 먹고 자란 자식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내 배로 낳은 자식이 아닌 내 작품으로 낳은 자식들도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노산을 바라보는 나이에 퍽이나 위로가 된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