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서핑(surfing)은 바다 위에서 몸을 맡기고 파도의 결을 따라 미끄러지는 레저 행위 같지만, 실은 끝없는 기다림과 실패,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에서 완성된다.
많은 사람은 종종 묻는다. 이렇게 작은 파도에서 무엇을 느끼냐고.
하지만 서퍼(surfer)는 안다. 파도의 크기가 아니라 파도와 자신이 이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이 전부라는 것을.
파도는 향기처럼 스쳐 가고 금세 사라진다. 그 덧없음 때문에 서퍼는 더 집요하게 그 순간을 쫓는다.
물은 절대 고정되지 않는다. 손에 움켜쥐면 흘러내리고, 모여도 압축되지 않는다.
바다에서는 작은 바람 하나에도 거대한 파동이 만들어진다. 먼바다에서 태어난 파동은 수많은 요소에 흔들리고 방향을 틀며 해안가에 다다른다.
수심이 급격히 얕아지는 곳에서 파동은 비로소 파도가 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바닷속에는 인간이 걸어갈 수 없는 길, 마법 같은 길이 열리게 된다. 세계에서 서핑이 가능한 바다는 손에 꼽는다. 지형과 계절풍, 해저의 경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남쪽과 동쪽의 계절 바람 덕에 간혹 그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좋은 파도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가 이내 사라진다. 파도는 기다림을 강요하지만, 그 기다림이 있기에 한 번의 성공은 더 벅찬 기쁨으로 다가온다.
서핑은 파도를 타는 기술이 아니라 바람과 물결의 언어를 읽는 일이다. 바람이 어떤 방향에서 불어오느냐에 따라 파도의 얼굴이 달라진다.
뒤바람이 강하게 불면 파도는 허무하게 깨지고, 맞바람이 불면 단단하고 묵직하게 일어선다. 바람과 물의 경계가 잠잠해지는 새벽, 바다는 유리처럼 매끄럽다.
그래서 많은 서퍼는 해가 뜨기도 전 바다로 향한다. 그들에게 새벽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파도를 기다리는 의식과도 같다. '여명 순찰대'라 불리는 이들의 모습은 어둠을 가르고 빛을 기다리는 일종의 헌신이다.
서핑의 역사는 오래됐다.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은 생계 수단만이 아니라 삶의 기쁨으로서 파도를 탔다. 통치자들조차 서핑을 즐겼고, 신분이 높을수록 더 크고 긴 보드를 가졌다 한다.
오늘날 보드는 과학기술 덕에 가볍고 날렵해졌지만, 파도를 다루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서핑은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자연 앞에 서서 유연하게 몸을 맡기는 예술이다.
땅에서는 중력을 버틸 자신감만 있으면 안전하지만, 파도 위에서는 그 어떤 확신도 통하지 않는다.
한 번 잘못 들어서면 파도의 무게에 내동댕이쳐지고, 때로는 바닥에 처박히기도 한다. 그때 할 수 있는 일은 몸의 힘을 빼고 파도의 분노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 무력함을 견디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고, 동시에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파도를 타기 위해선 먼저 파도를 기다려야 한다. 서퍼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바다를 바라보며 물결의 리듬을 읽는다. 파도의 간격과 흐름을 알아내기 위해선 수없이 실패하고 부서져야 한다.
그리고 한 번의 기회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달의 인력으로 밀려오는 조수간만의 차는 파도의 성격을 하루에도 두 번씩 바꿔놓는다. 좋은 파도는 기다리는 자에게만 허락된다.
서핑은 결국 '타이밍'의 예술이다.
어느 순간 출발선을 잘못 잡으면 파도는 이미 지나가 버리고, 바다는 금세 원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간다.
라인업에 서는 순간은 일종의 전쟁과 같다. 그 순간부터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파도의 박자에 맞추어 몸을 던져야 하고, 실패하면 다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파도를 향해 몸을 던지는 행위는 두려움과 흥분이 공존하는 모험이다. 길이 없는 바다 위에서 서퍼는 오직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서핑은 인간의 본능적인 용기와 고집을 시험한다.
서핑의 본질은 실패에 있다. 파도는 우리를 계속 넘어뜨리고, 서퍼는 그때마다 다시 일어선다. 이 반복은 결국 인간의 삶과 닮았다. 삶은 파도처럼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갑작스럽게 우리를 집어삼킨다.
그러나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증명한다. 서핑하다 보면 자연의 압도적인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도 바다로 나아가 다시 보드 위에 서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짧은 순간의 즐거움, 자신이 파도의 일부가 되는 듯한 해방감은 어떤 고통보다 크다.
서핑하며 깨달은 것은 파도가 늘 기다려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파도는 예고 없이 나타나고,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마치 삶에서 찾아오는 기회와도 같다. 서핑을 통해 배운 것은 기다림과 준비, 그리고 실패를 견디는 힘이다.
파도는 우리에게 기다림이란 고통 속에서도 삶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 기다림은 단지 파도를 타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스스로를 단단히 다잡는 과정이다.
바다 위에서 수없이 뒤집히고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면서도, 다시 몸을 가누고 라인업으로 돌아오는 서퍼의 모습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실패는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견디며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서핑은 인간이 자신과 자연을 동시에 이겨내는 고독한 싸움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서핑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새 파도를 타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자연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바다는 결코 인간의 욕심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서핑은 자연과 싸우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춤추는 일에 가깝다.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 순간을 즐기다 보면 삶에서 마주한 수많은 어려움도 결국 파도처럼 지나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서핑은 실패로 시작해 실패로 끝나는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실패 속에서 건져 올린 단 한 번의 성공이, 그리고 그 순간의 황홀함이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파도는 매번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마치 우리의 삶이 매일 새로운 도전을 던지는 것처럼, 서핑도 매 순간 예측할 수 없는 길 위에서 몸과 마음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서핑은 레저나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다.
파도는 늘 우리를 시험한다. 하지만 그 시험 속에서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찾는다. 실패와 두려움,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
서핑은 그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결국 서핑을 한다는 것은 바다 위에서 스스로와 싸우는 일이자, 다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파도는 언제나 한정돼있지만, 그 파도 위에서 느끼는 자유와 감정은 끝없이 확장된다.
서퍼는 그 자유를 붙잡기 위해 오늘도 수평선을 바라본다.
김정욱 (크루 및 작가 활동명 : KIMWOLF)
▲ 보스턴 마라톤 등 다수 마라톤 대회 완주한 '서브-3' 마라토너, 100㎞ 트레일 러너. ▲ 서핑 및 요트. 프리다이빙 등 액티비티 전문 사진·영상 제작자. ▲ 내셔널 지오그래픽·드라이브 기아·한겨레21·주간조선·행복의 가득한 집 등 잡지의 '아웃도어·러닝' 분야 자유기고가.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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