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공룡 시대에서 시간여행해 온 듯한 신비로운 새가 있다. 거대한 구두 모양의 부리와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몇 시간이고 꼼짝하지 않는 독특한 자세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슈빌이다.
현재 한국에 단 한 마리만 존재한다. 경남 사천시에 있는 한 아쿠아리움에서 '빌'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한없이 무서운 외모와 달리 온순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고대와 현대를 잇는 신비로운 존재인 까닭에 ‘살아 있는 화석’이자 ‘공룡의 후예’로 불리는 새 슈빌. 유명 동물 유튜브 채널 'TV생물도감'이 24일 ‘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있죠? 국내 단 한 마리만 있다는 무시무시한 녀석’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이 특별한 새를 소개했다.
'빌'이라는 이름의 슈빌. 한국에 단 한 마리만 살고 있다. / 'TV생물도감' 유튜브
슈빌의 정식 명칭은 '넓적부리황새'다. 사다새목에 속하는 대형 조류다. 예전에는 황새목으로 분류됐지만 분류 체계가 재조정되면서 사다새목으로 편입돼 '황새 아닌 황새'가 됐다. 영어 이름인 슈빌(Shoebill)은 신발을 뜻하는 '슈(Shoe)'와 부리를 뜻하는 '빌(Bill)'에서 유래했다. 넓고 커다란 부리가 구두를 닮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구두부리황새’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한국어로는 ‘넓적부리황새’로 불리며, 일본어로는 ‘부리넓은황새(ハシビロコウ)’, 중국어로는 ‘고래머리황새(鲸头鹳)로 불린다. 아프리카 현지에서는 작은 동물을 죽이는 놈이란 뜻의 ‘우푸망바우’란 이름으로 불린다. 슈빌의 강력한 포식자 본능을 반영한 이름이다.
'빌'이라는 이름의 슈빌. 한국에 단 한 마리만 살고 있다. / 'TV생물도감' 유튜브
아쿠아리움의 사육사는 "우리는 귀엽게 빌이라고 부른다"며 "슈빌의 빌 자 한 글자만 따서 별명이 아니라 그냥 이름이 빌"이라고 설명했다. 빌은 2013년생 태어났다. 수명이 수십 년인 까닭에 살 날이 아직 한참 남았다고 사육사는 밝혔다.
대형 조류인 슈빌의 외모는 기이하다. 목과 다리가 길어 평균 키가 110~140cm에 이른다. 큰 개체는 152cm까지 자라고 날개를 펴면 260cm에 이른다. 몸무게는 평균 5kg 안팎이지만 무거운 개체는 10kg에 달하기도 한. 먹이를 먹은 뒤에는 무게 때문에 날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부리다. 부리의 모서리는 날카롭고, 부리를 다무는 힘이 강해 먹잇감의 목을 단번에 자를 수 있을 정도다. 정면에서 보면 날카로운 눈매가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눈두덩이가 돌출된 탓이다. 옆이나 아래에서 보면 동그랗고 귀여운 눈을 볼 수 있어 ‘똘망똘망하다’는 표현이 제법 어울린다. 눈 색깔은 어릴 땐 노란색이지만 나이를 먹으며 푸른색으로 변한다.
슈빌은 주로 아프리카의 수단 공화국 남부, 남수단,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잠비아 북부에 분포한다. 케냐, 에티오피아 남서부, 카메룬 북부, 차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라위에서도 소수가 관찰된다. 이들은 주로 습지나 범람원처럼 물이 풍부한 환경에서 산다.
'빌'이라는 이름의 슈빌. 한국에 단 한 마리만 살고 있다. / 'TV생물도감' 유튜브
슈빌의 먹이 습관은 그 강렬한 외모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주로 물고기를 먹으며, 폴립테루스, 메기, 폐어 등을 선호한다. 사육사는 "원래 물에 사는 물고기들을 주식으로 먹어서 다양하게 주고 있다"며 "좀 비싼 것으로는 폐어, 메기, 폴립테루스, 그리고 저렴한 것으로는 미꾸라지를 먹이로 준다"라고 설명했다.
슈빌은 개구리, 물뱀, 거북, 달팽이, 설치류, 심지어 새끼 나일악어까지 사냥한다. 1m에 달하는 큰 물고기도 그 잘 늘어나는 목구멍과 강한 부리로 문제없이 삼킬 수 있다.
슈빌의 사냥 방식은 독특하다. 몇 시간 동안 부동자세로 서서 먹잇감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먹잇감이 슈빌을 단순한 장애물로 여기고 방심하면 순식간에 부리로 공격한다. 하지만 눈이 그리 좋지 않아 나무뿌리를 먹이로 착각해 공격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큰 먹이를 먹은 후에는 소화에 서너 시간이 걸려 다시 부동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관찰된다. 야생에서는 성체 나일악어를 제외하고 천적이 거의 없어 이런 느긋한 생활이 가능하다.
놀랍게도 무시무시한 외모와 달리 슈빌은 성격이 온순하다. 사육사는 "공격적이게 생겼는데 야생에서도 천적이 없기로 유명할 정도로 워낙 느릿하고 온순한 성격을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 현지인들도 슈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쿠아리움에서도 유리가 없는 환경에서 사육되지만 사람을 경계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사육사는 "사람을 조금 경계해 손님들이 지나다닐 때는 밖으로 나오지는 않고 물에 와서 목욕을 즐기곤 한다"라고 말했다.
슈빌은 날 수 있지만 잘 날지 않는다. 원래 날 수 있는데 잘 날지 않느냔 물음에 사육사는 “그렇다”라면서 “슈빌은 비행보다는 부동자세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슈빌의 독특한 행동 중 하나는 부리를 딱딱거리며 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성대가 없어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는 슈빌은 부리를 맞부딪쳐 소리를 내며 의사소통한다. 이 소리는 기관총 소리와 비슷할 정도로 요란하다. 참전용사들이 처음 슈빌을 만났을 때 굉장히 놀란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육사가 먹이를 주러 오면 부리를 딱딱거리며 반기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다.
구애 행동도 독특하다. 수컷은 머리를 흔들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부리를 맞부딪쳐 소리를 낸다. 암컷도 비슷한 방식으로 화답한다. 사천 아쿠아리움의 슈빌은 사람에게 익숙한 덕분에 고개를 숙이면 따라 인사하기도 한다.
무시무시한 생김새와 달리 슈빌은 무척 온순한 새다. / 'TV생물도감' 유튜브
슈빌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하품할 때 목 아래 부분이 튀어나온다는 점이다. 척추뼈가 돌출된 게 아니냔 오해도 받지만, 실제로는 아래의 부리가 넓고 목이 앞뒤 방향으로 유연해 밑에 있던 식도 일부분이 입 아래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게다가 이 행위는 사실 하품하는 것도 아니다. 슈빌이 왜 이러한 행위를 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먹이를 먹은 뒤 자주 관찰되는 것으로 미뤄 만족감의 표시가 아닐까 추정될 뿐이다.
번식기에는 한 마리의 새끼를 양육하지만, 두 마리가 부화하면 강한 새끼가 약한 새끼를 죽이고 어미를 독차지한다. 어미는 이를 방관하며 강한 새끼를 우선시한다.
슈빌의 뼈 구조는 고대부터 거의 변하지 않아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고대에서부터 크게 변형되지 않고 뼈 구조가 거의 비슷하게 이어져 왔다. 학계에서는 망치머리황새와 가장 가까운 종으로 본다. 과거에는 사다새와 황새 사이의 진화적 고리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현재는 분류가 모호한 독특한 조류로 간주된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화식조와 함께 ‘현존하는 공룡’으로서 대접받는 몇 안 되는 조류다.
한국에선 사천 아라마루 아쿠아리움에 단 한 마리만 살고 있다. 처음 사육 당시에는 비싼 폴립테루스를 공수해야 했지만 현재는 미꾸라지나 메기도 잘 먹는다. 일본 동물원의 자문을 받아 둥지를 만들어 자립심을 길렀으나 짝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슈빌은 독특한 외모 덕분에 대중문화에서도 주목받는다. 애니메이션 '케모노 프렌즈'에서는 날카로운 눈매로 "너... 혹시 인간?"이라는 대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원펀맨'의 작가 ONE은 홈페이지 메인에 슈빌 그림을 올리기도 했다. '몬스터 헌터 라이즈'의 환경생물 '가고루다'나 '젤다의 전설'의 로프트버드도 슈빌에게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슈빌은 야생에서 위협받는 존재다. 밀렵, 불법 포획, 나일강 댐 건설로 인한 서식지 감소로 개체 수가 급감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 목록에서 ‘취약(VU)’ 등급으로 분류된다. 인공번식이 매우 어렵다는 점도 개체 수 증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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