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미 칼럼] 비가 오는 날은 비의 가운데에, 바람 부는 날은 바람의 가운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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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칼럼] 비가 오는 날은 비의 가운데에, 바람 부는 날은 바람의 가운데에

문화매거진 2025-07-21 10:04:08 신고

▲ 일하는 곳에 걸려있는 액자. 글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 사진: 권선미 제공
▲ 일하는 곳에 걸려있는 액자. 글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 사진: 권선미 제공


[문화매거진=권선미 작가] 작년 2월 말 즈음 개점한 동네 앞 프랑스인이 하는 빵집이 있다. 내가 이 동네에 살긴 하지만 내가 봐도 여긴 낙후된데다 노령인구가 많은 곳으로 프랑스인이 파는 바게트는 더더욱이나 팔리지 않을 만해 보인다. 안 그래도 프랑스 빵집이 들어오기 전에 있던 젊은 여자 사장님이 하시던 ‘힙한’ 스타일의 디저트 집도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는데, 그 건물을 인계받은 것이 지금의 바게트 집이었다.

▲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예약판매하던 예전 여자사장님의 '쥬쎄' 베이커리의 케이크.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다 / 사진: 권선미 제공
▲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예약판매하던 예전 여자사장님의 '쥬쎄' 베이커리의 케이크. 이젠 추억이 되어버렸다 / 사진: 권선미 제공


‘망하지는 않으려나’ 노심초사하면서도 너무 건강한 맛이라 한동안은 발길이 닿지 않았었다. 한편으론 ‘이런 동네에서 얼마나 버티겠어’ 하는 마음으로 곧 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가게는 저녁 7시까지도 빵이 다 소진되지 않아서 해가 떨어진 시간에도 불이 한참 동안 켜져 있는 것을 몇 번이나 봐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한 달 전인가 매스컴을 한번 탄 이후로 놀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땡볕에도 줄을 서서 빵을 사 가고 있다. (여전히 어제도, 그제도!) 이제는 오후 3시만 되어도 빵이 소진되어 살 수가 없다.

가게 앞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 사진: 권선미 제공
가게 앞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 사진: 권선미 제공


▲ 나는 고다치아바게트, 초코헤이즐넛 바게트를 주로 사먹는다 / 사진: 권선미 제공
▲ 나는 고다치아바게트, 초코헤이즐넛 바게트를 주로 사먹는다 / 사진: 권선미 제공


간사하게도 요즘의 나는 평소엔 사 먹지도 않던 빵집에 줄을 서서 홀린 듯 그 빵을 종종 사 먹고 있다. 가끔은 아주머니들이 바게트를 두 봉지씩 사 가는 장면들을 목격하기도 한다. (두 봉지면 바게트가 10개 정도 된다.) 처음엔 혼자서 운영했던 가게가 손님이 많아지니 프랑스인 직원이 2명이나(그들은 친구인듯 하다.) 늘었다. 빵을 굽고 굽고 또 굽는다. 외람된 말이지만, 낙후되었다고 생각하던 오래되고 낡은 동네에(하지만 나는 이 동네를 정말 좋아한다.) 유럽 낭만의 상징처럼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국기를 휘날리며 프랑스인이 그 유명한 프랑스 바게트를 파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나 묘한 기분이 든다. 

아침에 그 근처를 지나가면 프랑스 라디오 소리가 새어 나오는데, 조용하던 동네에 작은 활기가 생긴 기분이다. (실제로 그 길거리는 아침이면 매우 고요하던 곳이었는데, 겨울엔 여명이 남아있을 즈음부터 라디오 소리가 새어 나오니 그 길을 지나칠 때면 나는 잠시 꿈을 꾸는 것만 같다.) 한편으로, 나는 집 앞에서 성공의 원칙을 그대로 목격한 것만 같다.

뭐든지 꾸준히 내 자리에서 해낼 것. 느긋한 나라인 프랑스의 사람이라 그런지(이것은 나의 고정관념이다.) 그는 참 느리고 꾸준하게 자신의 빵에 집중해왔다. 분명 주변의 누군가는 이런 동네에 무슨 바게트 집이냐고, 차라리 단팥빵을 팔라고 한소리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곳에서 바게트를 구웠고 바게트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맛이다. 물론 매스컴의 힘으로 장사가 반짝 잘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매스컴을 타기 전까지 이 동네의 한구석에서 꾸준히 빵을 구웠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제는 장사가 너무 잘 되어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시진 않으시려나 걱정된다. (사람 마음은 정~~말 간사한 것이 맞다.)

전에 참가했던 아트페어의 대표님과 지나가듯 대화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무심결에 ‘작가 생활을 위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라는 질문을 했는데, 대표님은 ‘아무래도 오래오래 작가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라고 답해주셨다. 역시 어느 분야든 그게 제일 기본인가 보다. 마음가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인 걸까. 결국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고 발전시켜나가며 오래오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모든 분야의 성공의 열쇠인 것이다.

▲ 차례를 기다리며 찍은 사장님 사진. 가게가 바쁘면 급하고 불친절하게 물건을 쳐낼 만도 한데, 항상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빵을 파신다 / 사진: 권선미 제공 
▲ 차례를 기다리며 찍은 사장님 사진. 가게가 바쁘면 급하고 불친절하게 물건을 쳐낼 만도 한데, 항상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빵을 파신다 / 사진: 권선미 제공 


아, 그리고 하나 더. 그 프랑스인 사장님은 바게트와 외국인에 생소하신 어르신들에게도, 아무도 말을 걸어줄 것 같지 않은 동네 백수에게도, 가끔 있는 진상 손님들에게도, 어린 친구들에게도 모두에게 친절하다. 진심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즐거워하시는 것 같아, 그걸 보는 나는 그가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것을 보며 ‘아. 일은 저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당장에 주변 작가들이 열심히 전시하고 컬래버레이션 하는 것만 봐도 조급해지기도 하고 마음이 급해 집중하지 못하곤 하는데, 그건 내가 빨리빨리 나라의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이건 정말 핑계겠지? 

아무쪼록 그의 빵이 되도록 천천히 추억 속에 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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