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와 이민 서사를 통과하며…몸부림치는 소녀들의 성장통 『여름은 고작 계절』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IMF와 이민 서사를 통과하며…몸부림치는 소녀들의 성장통 『여름은 고작 계절』

독서신문 2025-07-01 11:29:00 신고

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과거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매번 다른 모습이 된다. 기억들은 계속 변화한다. 하지만 내 이야기에는 바뀌지 않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고, 나는 그것을 빈틈없이 헤아리고 싶다. <8쪽>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함부로 선망하고 가진 것을 폄하하는 데 일생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천국은 언제나 밖에 있고, 집은 지옥이다. <9쪽>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처럼, 미국에서도 계속해서 이사를 다녔다. 오래된 건물과 수거되지 않는 쓰레기, 망가진 포장도로의 풍경 속으로 고요하게 이동했다. <23쪽>



가끔 대도시에 가거나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부촌의 끝자락을 지날 때, 나는 화려하고 커다란 건물들과 무언가 중요한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빛나는 사람들을 보며 ‘시간이 돈이다’라는 말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미래는 돈이 많은 곳에 가장 먼저 들르는 산타클로스였고, 그 새빨간 덩어리는 내가 머물렀던 곳들에 잘 와주지 않았다. 오직 무궁무진한 실망과 불만만이 빠른 속도로 다가와서 온 동네 어른들을, 투명한 어른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23쪽>

 

엄마와 대화하면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말한 건 그다지 고의가 아니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두 언어를 섞을 때마다 왜 잘난 척을 하냐며서 물건을 집어 던졌다.
“내가 로렌처럼 영어를 잘하게 되길 원한 거 아니었어?”
“네가 여기 사는 거 다 엄마 아빠 덕분이야. 그런데 어딜 감히 엄마를 망신 주려고 해?”
(…) 나는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 이 여자는 도움이 안 된다. 방해물. 피곤하다.
<45쪽>

 

한국을 떠난 뒤 나는 줄곧 사과받고 싶었다. 아무나 내게 미안하다고 말해주길 원했다. <60쪽>

 

고립이 무섭다는 걸 아는데도, 한나에게 나밖에 없다는 걸 아는데도, 나는 한나를 밀어내고 싶어서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마음이 자꾸만 두 쪽으로 쪼개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날 눈을 뜨면 한나가 말 한마디 걸 수 없는 백인 남자애가 되고 싶다가도, 한편으로 그 애의 든든한 한국인 지원군이 되고 싶기도 했다. 영어를 못하는 그 애의 얼굴에는 언제나 우리 엄마의 새빨간 실루엣이 들러붙어 있었고, 한나를 괴롭히는 애들 앞에서 그 애가 전혀 대항하지 못하는 걸 마냥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92~93쪽>

 

(...) 나는 더 이상 경계 위에 있고 싶지 않았다. 모든 곳에 속하느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신세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하루빨리 여자애들과 더 친해져서 그 애들 사이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싶었다. 초대받는 사람 말고, 무리 가운데에서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었다. <164쪽>

 

“셰리, 너는 나를 어떻게 기억해? 내가 불편했어? 애잔했어? 아니면……”
셰리는 한참 조용히 있다가 내가 그 애의 답을 더 기다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입을 열었다.
‘기억 안 나.’  <50쪽>

『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 344쪽 | 17,500원

[정리=유청희 기자]

Copyright ⓒ 독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