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한국섬유미술가회는 섬유미술의 정체성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
우리가 매일 날씨나 기분에 따라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듯, 섬유는 생활필수품으로서 인류의 생활과 함께 발달해 온 재료다. 한국의 경제성장기에는 국가 경제 발전의 주역으로 섬유산업이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소재의 발전 속에 미래산업으로서의 가능성도 엿보는 중이다. 이처럼 섬유라는 친숙한 매체가 지닌 특성은 예술가에게도 무한한 영감을 제공했고, 인간의 감정과 삶의 다양한 면을 표현하는 ‘섬유미술(Fiber Art)’이라는 예술 장르로 발전했다.
한국 섬유미술의 역사와 미래를 잇는다
한국의 섬유미술은 전통적인 자수 예술에서부터 시작해 현대적인 섬유 조형, 직조, 염색 등 다양한 기법과 소재를 활용하여 발전해왔다. 그 중심에 한국섬유미술가회(Korea Fiber Artists Association)가 있다. 1984년 섬유미술을 주도적으로 이끈 작가들을 주축으로 창립되어, 지난 40여 년간 국내외 전시, 학술 세미나, 국제 교류 등을 통해 한국 섬유미술의 발전과 세계화를 선도해왔다는 평가다. 이를 통해 실험성과 전통성, 감성과 기술이 융합 공존하는 다양한 창의적 예술 세계를 만들며 한국 미술계에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내 섬유미술의 역사적 축적과 미래 방향성을 동시에 책임지고 있다.
특히 격년으로 정기전과 기획전을 번갈아 개최하는 ‘한국섬유미술비엔날레’는 평면, 입체, 설치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현대 섬유미술의 확장된 표현 방식과 조형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장이 되어왔다. 또한 한국-인도네시아 국제섬유미술 교류전, 한-일 섬유교류전, 아시아 현대 섬유미술의 위상전 등 다채로운 기획전을 통해 한국 섬유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도 맡았다.
한편, 최근 한국섬유미술가회의 신임 회장으로 우현리 국립강릉원주대학교 패션디자인학과 교수가 선임되었다. 우 회장은 건국대학교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한국한지문화산업발전연합회 이사장 역임을 거쳐 현재 한국텍스타일협회 이사,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 이사, 강원도 무형문화재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섬유미술 발전에 헌신해 온 인물이다. 그는 “현대 섬유미술의 환경 속에서 한국 섬유미술의 전통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단체로서의 명성에 걸맞도록 활발한 활동을 펼쳐 섬유예술의 위상을 높이고, 후속 세대의 양성과 지역 문화자원의 활용을 통해 섬유예술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칭찬’이 이끈 화가의 꿈, 천 위에 삶을 담다
우현리 회장의 예술가로서의 길은 아주 단순한 곳에서 시작됐다. 우 회장은 “학생들에게 칭찬은 학습의 흥미를 일으키는 원동력이고, 학습 능률을 올리는 최고의 가치”라고 강조했는데, 이처럼 초등학교 미술 시간, 그림을 그릴 때마다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그림이 벽에 붙여지는 경험은 어린 그의 마음속에 ‘화가’의 꿈을 심어주었다. 이후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인사동 화랑 거리를 찾아 전시를 관람하고, 모르는 작가들의 이름을 알아가며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개인전을 여는 꿈을 꾸게 된다.
대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섬유미술을 전공하게 된 우 회장은 그렇게 캔버스 대신 천에 염색 기법을 통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996년 관훈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20회가 넘는 전시를 꾸준히 열었다. 초기에는 실크와 가죽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했고, 천연 염색을 이용한 조각보 작업에 이어 펠트 작업으로 스카프와 숄을 제작하여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DTP(Digital Textile Printing) 작업을 통해 캔버스, 원단 등에 프린팅하는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와 함께 30여 년간 교육자로서의 길도 걸어왔다. 현재 국립강릉원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바른 인성을 기본으로 창의성과 자율성, 성찰적 사고를 갖춘 긍정적인 예술가를 양성하고자 한다”고 교육 철학을 피력했다. 작가로서는 섬유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선생으로서는 학생들이 자율성과 책임감을 지닌 예술가 또는 사회인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소명인 셈이다. 우 회장은 “섬유는 일상의 삶과 밀접한 재료이자 동시에 시대정신을 품을 수 있는 깊이 있는 예술 매체”라고 정의하며, 작가로서 전통과 현대적 표현의 자유로움을 융합하여 섬유미술이 감성적·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단순한 기술 전달을 넘어, 스스로 미적 감수성과 창의적 사고를 통해 시대적 책임을 자각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연결’을 통한 확장, 섬유미술의 미래 여는 플랫폼
우현리 회장이 한국섬유미술가회를 운영하며 추구하는 가치는 바로 ‘연결’이다. 그는 “세대 간, 지역 간, 국가 간 예술가들이 함께 호흡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창의적 플랫폼을 구축하고, 한국 섬유미술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구축하는 일”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섬유미술이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에 더해 문화, 교육, 환경 문제까지 통합하며 생산과 소비를 잇는 지속 가능한 창작 예술의 연결 관계와 가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도 전했다.
전통과 현대적 감성,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접목하여 섬유미술의 예술적 스펙트럼을 넓혀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전한 우 회장은 섬유미술이 패션, 리빙, 문화상품 등 실용적 제품으로 전환을 모색하여 예술과 산업이 상생하는 구조를 강화하는 연구에도 힘쓰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다양한 분야와 협업 체계를 구축하여, 지역 문화 자산과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는 통합형 창작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말을 맺으며 우현리 회장은 한국섬유미술가회가 앞으로도 ‘섬유미술의 미래를 여는 플랫폼’으로서, 작품 발표 공간을 넘어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고 국제적 감각을 품은 창작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전했다. 급변하는 예술 환경 속에서도 섬유미술이 고유의 정체성과 가치를 잃지 않고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지난 40여 년간 협회를 만들고 발전시켜준 고문님, 자문님과 동료 회원님들에 대한 깊은 감사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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