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1. 쉬는 시간을 계획
열일곱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실로 간만에 ‘오늘 할 일 없음’ 날이었다. 몰아 놓았던 작업도 마무리했고 이제 글쓰기와 구상 기간으로 들어왔다. 올 상반기의 전시가 끝나 가능한 잠깐의 휴식기다.
새로운 글과 장면을 끄적거리기 위해 가지 않던 장소와 굳이 하지 않던 행동도 계획표에 넣어 볼 생각이다. 흡사 길을 걷다 발견한 슈퍼에서 하드 하나를 사서 베어 무는 기분으로 여름을 나 보는 상상과 같다.
실제 그런 모습으로 땡볕아래에 나를 둬 볼 생각이다. 더위와 햇빛의 따가움과 그로 인한 후덥지근함, 신체를 적시는 습도 등이 내게 무슨 장면을 떠올리게 할까 싶은 마음이다. 그에 약간의 기대를 동반한 부유감을- . 그 부유감 안에 제대로 나를 침수시켜 볼 것이다. 숨이 모자라 안올라오고는 못 배길때까지.
2. 실행을 취소하는 실행
병적으로 틀어 놓던 OTT 앱을 모두 삭제했다. 한창 전시들을 준비하던 동안 무엇이 그렇게 불안하고 허전했는지, 온갖 플랫폼들을 번갈아 실행하며 보지도 않는 영상들을 틀어 놓았다.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왓챠, 티빙, 디즈니- 알고 있는 모든 앱을 구독하며 작업과 함께 달리기를 몇 개월.
상반기 전시들이 마무리되고 정적이 찾아왔다. 내 공간, 내 마음, 내 불안에도 정적이 찾아왔다. 더 이상 영상들로부터 얻는 소란스러움이 필요치 않게 되어 구독을 취소했다.
내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내면을 정돈하고 청소해야 할 때가 되었음이다. 당장 어딘가에 출품할 작업물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이때가 생각과 상상을 독려하고 토해내며 개중 쓸 만한 것을 건져 올리기 좋은 때이다.
3. BREAK TIME
요식업에서 일하다 보면 더 직접적으로 BREAK TIME(브레이크 타임)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주문이 한 바탕 몰아친 후 소진한 재료를 준비하고, 혼란한 개수대를 정리하며 다음 타임을 대비한다. 앉아서 쉰다기보단 부족한 것을 다시 채우고 사용해야 할 도구들을 씻어 놓는 시간이라 실상 쉬는 시간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굳이 소리내어 ‘말을 안해도 되는 시간’인 셈이라 휴식의 역할 또한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점이 작가가 휴식기로 삼는 잠깐의 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직장에서 일하다가도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그래 유정은 지금 브레이크 타임 안내판을 걸어 놓았구나.
그렇게 올여름은 휴식기로 보내기로 했다. 외부와는 최소한의 연락만 주고받으며 나의 상태를 샅샅이 살피는 시간. 내년에 욕심내어 놓은 몇 개의 전시를 머릿속에 그리고 그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아카이빙 하는 시간. 브레이크 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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