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세기에 걸친 스페인인들의 아메리카 정벌에서
군견은 기병.강철과 더불어 일등공신으로 꼽히는데
여러 기록이 이를 증명함
원주민 토벌에 처음 군견을 동원한건 1493년에 아메리카에 다시 온 콜럼버스였는데 원정대의 보급담당관 후안 로드리게즈는 20여 마리의 군견을 가축이 아닌 무기로 분류했고,
군견들이 원주민 100명을 순간에 도륙하자
그들을 병사와 비교하면 일당십의 몫을 해낸다고 평가함
이후 중남미 정벌에 계속해서
군견들이 투입되고 상당한 성과를 거둠
"머스킷만큼 파괴적이다"
-후안 데 에스퀴발, 자메이카 원주민 토벌 (1509)
"개가 사람보다 낫다"
-바스코 데 발보아, 태평양 원정 (1513)
이러면서 군견들 중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챔피언들도 나타났는데
헤르난도 데 소토의 플로리다 정벌에 종군한 군견인
그레이하운드 브루토(Bruto)는 노예 20인을 보상으로 받았고
폰세 데 레옹의 군견인 스패니쉬 불독 품종의 베르세릴로는 병사들과 같은 봉급.식량을 받음
폰세 데 레옹의 군견이었던 붉은 털색의 스패니쉬 불독 베르세릴로(스페인어로 새끼 황소)는 병사 50명 몫의 일을 해냈다며 사람이랑 똑같은 수준의 음식과 임금을 지급받았고, 혼자서 34인의 원주민을 죽였다는 목격담이나, 원주민 노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살려주면서 파나마에서의 원주민 학대를 멈추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기도 함.
베르세릴로의 새끼인 레옹시코(새끼 사자)는 위에서 나온 발보아의 원정에 동행했는데, 역사가인 곤잘로 페르난데즈 데 오비디오 이 발데즈가 이 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김
"이 개(레옹시코)는 주인에게 2000페소에 달하는 금화를 벌어다줬는데, 노예와 금을 분배할 때 사람과 동등한 분량을 지급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이 개는 잠자리를 같이하는 사람 이상으로 대접받을 만 했다. 레옹시코의 지성은 놀라웠다; 개는 인디오가 호전적이거나 그렇지 않은지 구분할 수 있었다. 개가 사람을 쫒아서 데려올 때, 인디오가 저항하지 않았다면 레옹시코는 그를 깨물거나 괴롭히지 않고 손이나 옷소매를 가볍게 물어서 데려왔지만, 인디오가 저항한다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 개에게 보호받는 10인이 그렇지 못한 20인보다 더 안전할 정도였다."
스페인 군견들이 기이할 정도로 높은 교전비를 올린 이유는 크게 2가지
우선 원주민들은 철제 갑옷이 아닌 천이나 펠트 갑옷으로 무장하거나 몸이 드러난 복장으로 싸우는 일도 있었기에 군견이 공격하기 딱 좋은 상태였으며 외모도, 체취도 유럽인들과는 완전히 달랐기에 피아식별도 쉬웠음
또한 당시 원주민들이 기르던 개라고는 전투와는 영 거리가 먼
오늘날의 치와와의 조상격인 애완.식용의 소형견
테치치(Techichi)밖에 없었기 때문에
유럽에서 온 큰 군견들은 원주민들에게는 코즈믹 호러 같은
미지의 공포스런 존재들이었을 것임
이런 점을 잘 아는 콩키스타도르는
원주민 포로를 공개처형할 때
개들이 그들을 잡아먹게 하거나
개들을 풀어서 일명 「라 몬테리아 인페르날(La Monteria Infernal)」이라고 불리는 인간사냥을 단행하기도 했다고 함
1516년에 히스파니올라의 도미니코회 수도사 14명이 왕실에 보낸 항의 서한에서는 스페인 병사들이 아기를 안은 여인에게서 아기를 빼앗아서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는 내용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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