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벌칸 지구는 지속 가능성과 스타일, 일상의 여유로움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를 유럽에서 가장 여행하기 좋은 도시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와 안락함, 조용한 혁신이 어우러진 도시 여행지를 찾는다면, 오슬로가 그 답이 될 수도 있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는 예상치 못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이 도시에는 모든 교통수단이 전기화되어 있고, 삶의 공간들이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다. 도시의 일상적 편리함을 느끼며 여유롭게 걸을 수도 있다. 즉 오슬로는 경유지로 하루 정도 여행하기에 정말 완벽한 도시 여행지다.
나는 벌칸 지구에서 시작해 하루짜리 오슬로 여행을 즐겼다. 과거 벌칸은 낙후된 공장 지대였지만,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소규모 커뮤니티로 꼽힌다. 아케르셀바 강 유역에 자리한 벌칸은 마치 오슬로를 축소해 놓은 듯, 예술과 문화, 맛있는 음식이 즐비하다. 나는 벌칸 지구 중심 광장을 찾아갔다. 광장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한낮의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저녁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식재료를 준비하는 상인들로 분주했다. 푸드 홀과 콘서트장, 클라이밍 체육관, 댄스 공연장 등으로 둘러싸인 벌칸의 풍경은 흡사 '도시 속 도시' 같았다.
벌칸이 늘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오슬로 중심부에 있는 이 강변 지역에는 낡은 콘크리트 덩어리와 깨진 창문이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열로 도시를 움직이고 옥상 태양광 패널로 냉난방을 하며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문화 콘텐츠가 있는 아담한 마을이 되었다. 밀도와 디자인,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설계된 벌칸이 '도시가 오래된 공간을 어떻게 재창조하여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가 된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하루를 머무는 동안, 노르웨이 수도 중심부에 일어난 조용한 혁신과 주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최우선 가치로 삼은 도시의 풍경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벌칼이 유행을 선도하고 활력이 넘치는 도시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중세 시대에 이 지역은 오랫동안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산업 혁명이 이어진 19세기 중반에는 여러 개의 주물공장이 들어서며 제조업의 터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 산업이 쇠락하면서, '대장장이 신'의 이름을 딴 이 곳의 공장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됐다. 공장으로 분주했던 공간들이 창고로 전락해버린 2004년, 오슬로 시 당국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이곳에 미래의 도시상을 보여줄 수 있는 도시 속 도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2004년, 부동산 개발업자인 아스펠린 람과 앤톤 B 닐슨이 훗날 벌칸 지구가 될 땅을 매입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은 심각하게 황폐화된 곳이었다고 한다.
아스펠린 람의 영업 디렉터로 일했었던 스베레 랜드마크는 "(그때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놀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깨진 유리창이 널려 있었고, 벽에 낙서도 많았고, 마약 중독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죠. 정말 지저분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벌칸은 몇 년 만에 달라졌다. 2008년에는 광장 한 쪽에 국립 현대 무용 극장 '단센스 후스'가 문을 열었다. 2012년에는 옛 주철 공장 자리에서 노르웨이 최초의 푸드 홀 '마탈렌'이 운영을 개시했다. 현재 마탈렌에서는 12개가 넘는 레스토랑과 술집, 베이커리 카페, 상점들이 성업 중이다. 나는 마탈렌에 있는 해산물 가게에서 구입한 굴 12개와 작은 포크 바오 2개, 홈메이드 카시오에 페페 파스타, 현지에서 양조한 맥주로 저녁을 해결했다. 마탈렌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니, 공연장 벌칸 아레나가 나왔다. 950석 규모의 이 공연장에서는 '소닉 유스'의 킴 고든, 인디 록의 거장 머큐리 레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메탈 밴드 다운셋' 등이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벌칸은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도시를 지향했다. 광장과 인근 저층 건물 아래 300m 지하에는 지열 우물이 있는 이유다. 도시 곳곳에 있는 태양광 패널은 길고 추운 겨울에도 자체적으로 난방을 해결하게 해주고, 짧은 여름에는 냉방까지 책임져 준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상업용 건물도 외부 태양광 패널로 물을 데우는 친환경 건축물이다. 그리고 광장에서 넓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149개의 객실을 갖춘 '스칸딕 벌칸'이 나온다. 디자인으로도 주목받는 이 호텔은 노르웨이 최초로 EU 최고 에너지 효율 A등급 인증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옥상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3m 높이의 벌통 한 쌍으로 이루어진 '벌칸 양봉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양봉 프로젝트는 한때 아케르셀바 강을 따라 번성했다가 급격히 줄어들은 꿀벌을 늘리기 위해 2014년에 시작되었다. 꿀은 오슬로 어디에서나 살 수 있지만, 마탈렌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가장 신선한 꿀을 맛볼 수 있다.
벌칸 지구의 모든 요소는 약 9400 제곱미터, 즉 도시로 치면 대략 한 개의 블록 안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벌칸 지구 곳곳을 단 몇 시간만에 즐길 수 있다.
랜드마크는 "벌칸은 버려져 있던 오슬로 내부의 한 지역을 완전히 새롭게 단장해, 이동 거리를 단축하는 동시에 도시를 더욱 확장시켰다"고 말했다. "벌칸은 문화적 콘텐츠와 실제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런 점이 지난 10~20년 동안 오슬로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던 기업가들에게 많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현지인들도 이러한 평가에 동의한다. 오슬로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금융 전문가 프레드릭 레모이는 "벌칸은 오슬로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요소"라고 말했다. "이곳은 매우 편안하면서도 글로벌한 느낌이 있습니다. 오슬로에 활기와 동시에 따뜻함을 불어넣어 주는 지역입니다."
작은 공간이기는 하지만, 벌칸 지구 개발이 아무런 계획 없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지속 가능성을 향한 선구적인 노력을 해온 오슬로와 노르웨이가 지구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설계하고 개발한 것이다.
오슬로의 아담한 도심을 거닐다 보면, 가장 기분 좋은 것 중 하나는 적은 차량 통행량이다. 트램이 다니는 이 도시에는 유독 자전거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오슬로 시내에서는 2017년부터 휘발유 엔진 사용이 금지되었다. 때문에 버스와 택시, 자가용 등 모든 자동차는 전기차다. 교통량이 적다보니, 도시는 차분하면서 여유롭다. 번화한 대도시 한복판에서도 다른 도시들보다 더욱 개방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 바로 오슬로인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보면, 벌칸 지구는 더 큰 목표의 초석이 될 수도 있다. 동네 하나를 완전히 지속 가능한 동네로 만들 수 있다면, 도시 전체도 그렇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도시가 가능하다면, 국가는 어떨까? 국가가 가능하다면, 우리 사회도 가능하지 않을까? 현재 노르웨이도 아마 이러한 질문을 하고 있는 듯하다.
노르웨이는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고,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밝혔다.
오슬로에서의 하루가 끝나갈 무렵, 나는 이 도시의 상징적인 액티비티를 즐기기로 했다. 2024년 이곳을 알리는 광고는 여행자들에게 '관광'이 아닌 '생활'을 권했다. 그 광고처럼 나는 이 도시에서 현지인의 생활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택시(물론 배기가스 없는 전기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떨어진 비요르비카 지구로 이동했다. 이곳은 오슬로가 새롭게 개발 중인 지역 중 하나다. 이곳 역시 기존 공간의 다양한 기능을 살리되, 밀도와 창의적 활용에 초점을 맞춰 지역을 개발하고 있다.
나는 인근에 있는 뭉크 박물관의 불빛이 도심 수로인 오슬로피오르드 수면에 반사되는 수상 사우나로 향했다. 목재로 외관을 만든 이 셀프 서비스 사우나의 실내 온도는 80℃에 육박했다. 나는 이곳에서 2시간 가량 사우나를 즐겼다. 사우나 내부와 밤하늘 사이쯤 되는 온도의 입구로 갈 때마다, 과열된 내 몸에서 수증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그렇게 땀을 빼고 물에 몸 담그기를 반복하며, 나는 오슬로가 얼마나 '주민들이 살기 좋은 곳'을 지향하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도착한 지 12시간 만에, 나는 이미 오슬로에 커다란 친밀감을 갖게 됐다. 아마도 조용한 거리 분위기나 오슬로의 정수를 광장 하나에 압축해 놓은 벌칸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보통 도시 여행지라고 하면 혼잡하고 붐비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슬로를 찾은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맑은 공기와 느린 속도, 미래 도시에 대한 청사진 등 도시 여행지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을 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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