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75년] ⑤ "내 총에 쓰러진 인민군이 고향 친척형일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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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5년] ⑤ "내 총에 쓰러진 인민군이 고향 친척형일까 두려웠다"

연합뉴스 2025-06-22 07:01: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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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에 입대한 구순 참전용사 임석환 예비역 상사

(포천=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인민군들이 아이들을 정찰병처럼 쓰며 군인들을 발견하면 크게 울어서 알리게 하는 바람에 아이들이 무차별 사살되는 일도 있었지. 군인, 민간인 가릴 것 없이 사람 죽이는 일이 벌레 잡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시절이었어."

인터뷰 하는 임석환 참전용사 인터뷰 하는 임석환 참전용사

(포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임석환 참전유공자가 경기 포천시 보훈회관에서 6.25전쟁 75년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6·25 전쟁 75주년을 앞두고 경기 포천시 보훈회관에서 만난 6·25 참전용사 임석환 참전유공자회 포천지회 지회장은 93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정정했다.

이등병으로 입대해 상사까지 진급하며 인제지구 전투, 오성산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전과를 세운 그는 고생이나 무용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대신 기자에게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잘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임 회장은 황해도 출신으로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인연을 맺고 있던 목사의 권유로 형과 서울로 내려왔다.

당시 임 회장은 15세, 형은 17세였다.

서울역에서 풀빵과 껌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 형제는 서울생활 약 한달 만에 징집돼 제주도에서 훈련받았다. "서울에서 경기도 양평까지, 양평에서 부산까지 2개월간 걸어서 이동하며 죽창을 들고 총검술 연습을 했다"고 임 회장은 전했다.

임 회장은 당시 나이가 어려 입대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형과 헤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징집관에게 간청해 입대했다고 한다.

이렇게 군 생활을 함께 시작한 형은 이후 훈련을 마치고 본격적인 전투에 투입되기 직전에 중공군이 쏜 포탄에 전사했다.

보병과 포병으로 최전방에서 여러 전장을 누빈 임 회장은 당시 전투에 대해 "지금은 드론이 등장하지만 당시 전투는 총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내려치는 육박전이 대부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야간에 참호 속에서 자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비몽사몽 버티다 날이 밝아 오면 옆에 있던 전우가 어디서 날아온 줄도 모르는 총알에 숨져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며 "적막한 밤 혹시 총알이 없다는 이야기를 무심코 하다 적군이 들을까 봐 속삭인 기억이 난다"고 웃었다.

깨끗한 물조차 보급이 어렵던 시절 임 회장은 정화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UN군이 부러웠다고 한다.

"전사한 시체에서 나온 피와 침전물이 섞인 계곡물이라도 어렵게 구해 지휘관에게 전했더니 너무 시원하게 마시던 지휘관의 얼굴이 기억난다"는 그는 "오줌이라도 마시고 싶었는데 그때 물을 못 먹어서 결린 병이 아흔이 넘는 지금까지도 괴롭힌다"고 말했다.

끌려오다시피 참전한 전쟁이지만 임 회장은 국군이 황해도 이북으로 다시 진군하면 가족들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정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인터뷰 하는 임석환 참전용사 인터뷰 하는 임석환 참전용사

(포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임석환 참전유공자가 경기 포천시 보훈회관에서 6.25전쟁 75년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적군을 쓰러트리고 전투에서 승리하면 그렇게 신날 수 없었을 만큼 기뻤지만, 동시에 동족끼리 총을 겨누는 비극적 상황은 늘 그와 전우들을 괴롭혔다.

"총을 한 방 쏴서 적이 풀썩 쓰러지면 통쾌하다가도, 밤이 되면 혹시 그 사람이 우리 고향 친척 형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엄습해 두려웠다"는 그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죽음의 그림자는 군인, 민간인에 예외 없이 드리웠다.

임 회장이 입대하기 전 그의 외삼촌은 주민 간 이념 대립 때문에 장날 장작불에 불태워졌고, 동네 교장선생님은 반대 진영에 의해 나무에 묶여 총살당했다.

그는 "피난민들도 배신자로 취급당해 군인들에 발각되면 무차별 사살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며 "군인의 총칼이 아니더라도 피난민 어머니 등에 업힌 아이는 얼어 죽고, 가슴에 껴안고 가던 아기는 굶어 죽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꼬박 7년 군 생활을 하며 5사단부터 수도 기계화사단 등을 거친 그는 휴전 후 상사까지 진급했다가 전역했다.

노병의 손 노병의 손

(포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임석환 참전유공자가 경기 포천시 보훈회관에서 6.25전쟁 75년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역 이후에는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고 구걸까지 했던 임 회장은 부대원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준 쌀을 밑천 삼아 가축을 키우며 생계를 꾸렸다.

그는 인터뷰 내내 본인의 헌신보다는 후손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그는 "부대에 한글 아는 사람이 없어서 병사들이 위문편지를 읽어달라고 가져오면 선임하사가 한글을 아는 척하며 적당히 내용을 지어내 읽어줬을 정도로 교육 수준이 낮은 나라였다"며 "이후 세대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해 고마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이란 사람 목숨을 벌레처럼 거둬가는 것"이라는 그는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자의 손을 꼭 잡았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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