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완주] 김정용 기자= 지난 5월 전북현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강상윤과의 대화는 예상보다 더 시원하게 흘러갔다. 첫 질문에 대한 답이 “자신 있었죠”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스스로 가진 기량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살아남겠다는 다짐의 산물이었다.
▲ 노력의 천재
강상윤에게 누구나 기대를 걸었지만, 이만큼 많이 뛸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준프로 계약을 맺고 15경기에 출장한 뒤 임대를 떠났다. 프로 2년차에 부산아이파크에서 K리그2를 경험했고, 3년차에 수원FC에서 K리그1 주전급 미드필더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올해 전북으로 돌아왔는데 시즌 초에는 선발이 아닌 교체로 뛰었다. 거스 포옛 감독이 큰 기대를 밝혔던 것에 비해 출장시간이 짧았다. 이때 강상윤은 조바심을 내지 않고 오히려 기회만 주어지면 주전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그 결과 기어코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전북 1위 등극의 주역으로 꼽히고 있다.
“자신은 있었어요. 여기서 뛰기 힘들었던 시기에는 임대를 통해 경험을 쌓고 와야겠다 생각했고, 수원FC와 부산아이파크 감독님과 코치님들을 통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요. 다시 전북으로 돌아왔을 때는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었죠. 그런데 시즌 초 생각만큼 많이 뛸 수 없더라고요. 단 10분이나 20분이 주어져도 그 안에 임팩트를 보여주고, 훈련장 역시 기회니까 내 모습을 보여주자 생각했죠. 하루하루 보여주고 인내하고 기다린 결과 지금처럼 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임대 팀에서 프로 경험을 하고 나니까, 한번만 기회가 온다면 확실히 잡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렇게 시즌 초반을 버텼죠.”
강상윤은 기술적이고 지능적이면서도 팀 플레이어다. 전북 선배 이재성, 전북에서 행정가로 인연이 있는 박지성 등 전설적인 선배들과 비견된다. 이런 능력을 타고났다기보다 ‘노력파’라고 자신을 평가한다. 전북 유스 시스템에서 성장하는 내내 팀 훈련보다 1시간 일찍 나가서 보강 운동, 팀 훈련 끝난 뒤 코어 트레이닝, 여기에 기본기 훈련까지 꾸준히 했다고 자부한다. “제가 꾸준히 노력했다는 건 진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처음부터 실력을 타고난 건 아니고, 경험을 쌓고 노력하면서 매년 더 실력이 늘고 있는 것 같아요. 전북에서 처음 데뷔했을 때는 앞이 안 보이고 전반전만 뛰어도 호흡이 가빴어요. 부산아이파크 임대가 끝날 즈음부터 프로에 적응하는 걸 느꼈고, 수원FC에서도 초반에는 주위가 안 보였지만 갈수록 형들과 부딪치면서 계속 늘었죠. 이젠 경기 중 고강도 동작을 할 때 빠르게 뛸 수 있게 됐어요. 공을 잡았을 때 주위를 둘러보자고 스스로 다짐하면 실제로 볼 수 있게 됐죠.”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플레이스타일과 보완해야 할 부분에 대해 이론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친 김에 자신의 스타일을 정의해달라고 하자 “수적 우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팀의 에너지 레벨을 높일 수 있고, 공격 지역과 수비 지역 양쪽에서 언제나 수적 우위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많이 뛰기만 해서는 안 되고 판단력이 중요하다. 이재성, 박지성이 거론되는 이유도 그들의 판단력을 물려받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 전북 유스출신 최대 아웃풋
강상윤은 전북 볼보이 시절 ‘1열에서 직관’한 이재성뿐 아니라 박지성, 황인범, 주앙 네베스, 하타테 레오의 영상을 많이 참고한다고 밝혔다. 한국 선배나 유럽의 유명 미드필더는 당연히 이해가 되는데, 셀틱 소속 일본 대표 미드필더 하타테의 영상을 찾아본다는 이야기는 신선하게 들렸다. “하타테요?”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셀틱 경기를 우연히 봤는데, 미드필드에 좋은 선수가 한 명 있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보며 공부를 했어요. 하타테 스페셜도 보고 셀틱 풀영상도 봤는데 배울 게 정말 많은 선수였어요. 하타테는 진짜 많이 뛰고 팀의 수적 우위를 잡게 해 주고요. 움직임은 자신이 공을 받기보다 동료가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움직임이 많아요. 마지막으로 공격 포인트도 잘 만들어 내고요. 그 부분을 배우려고 합니다.”
하타테에 대한 이야기에서 강상윤의 특별함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공을 받기 위한 움직임보다 한 차원 높은 건, 자신에게 붙은 선수를 끌고 가면서 동료가 패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움직임이다. 이를 잘 수행하는 선수는 국내에 많지 않다. 강상윤은 상대 중원을 교란하면서 동료를 편하게 해 주는 전술적 임무를 잘 수행한다. 이를 통해 득점 1위 전진우가 더 편한 환경을 얻게 된다. 그가 전진우에게 “내 덕분에 꿀 빠는 형”이라고 농담하는 건 단순한 ‘디스’가 아니라 뼈가 있는 농담이었다.
‘유스 출신 최대 아웃풋’ 강상윤은 구단 입장에서 더 특별한 선수다. 전북은 많은 유망주를 수집하고 올랭피크리옹과 교류하는 등 나름대로 육성에 신경을 써 왔지만 1군에 자리 잡은 선수가 드물었다. 전북의 역대 대형 신인 이재성, 김민재는 직접 육성한 선수가 아니었다. 유소년팀인 영생고 출신 중에서는 1군에서 가능성을 보여줬음에도 결국 일찍 이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강상윤은 단계적인 임대, 포옛 감독의 중용이 맞물리면서 유소년팀 선배들보다 더 안정적인 활약 중이다.
“부담을 주시기도 해요(웃음). 구단 프런트들께서 영생고 출신이니까 좋은 모습 보여줘야 된다고도 하시고. 또 중학교와 고등학교 감독님들 뵈면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해 주시기도 하고요. 더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걸 많이 느끼죠. 사실 많은 분들이 모르시겠지만 준프로 계약 하기 전에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A팀과 훈련할 기회도 주셨어요. 성장에 큰 도움이 됐죠.”
강상윤은 시즌 목표를 정할 때 성적만 쓰지 않는다. 강상윤의 일지 맨 뒷장에는 올해 명심해야 할 것들이 10줄 적혀 있다. 맨 위에는 ‘전북현대 A팀에서 살아남기’가 써 있고 그 아래는 ‘주도적으로 플레이하기,’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기’ 등 명심해야 할 원칙들이 이어진다. 그가 가진 목표는 결과가 아닌 내용이다.
▲ 데뷔골을 더 원하는 이유
많은 출장기회를 주는 거스 포옛 감독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단 페트레스쿠 감독 시절을 조금 경험해 보긴 했지만 시즌 내내 외국인 감독의 지도를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상윤은 포옛 감독이 상대 분석을 빠르고 정확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침투와 빌드업 등 자신의 임무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조정이 들어온다고 한다.
“굉장히 편하게 해 주시는 편이에요. 제가 치료실에 있는 걸 보시면 꼭 한마디 하고 가세요. 네 나이에 무슨 마사지가 필요해? 나가서 그냥 뛰어, 라고 장난을 치시고요. 경기 전에도 긴장감을 해소해주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 덕분에 적응이 더 쉬웠던 것 같아요.”
전북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과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같다. FC서울 원정에서 골을 넣었다가 비디오 판독(VAR)을 통해 콤파뇨의 핸드볼 판정으로 취소됐을 때다. 강상윤은 공을 밀어 넣자마자 골대 뒤 서포터에게 달려가 엠블럼을 잡고 흔든 뒤 양팔을 거만하게 벌리는 등 다양한 골 세리머니를 했다.
“세리머니를 엄청 많이 했거든요. 근데 다 하고 딱 돌아오니까 VAR 체크를 하고 있잖아요. 속으로 엄청 빌었는데 결국 취소가 됐어요. 그 순간이 최고이자 최악입니다. 그 뒤로 아직까지 전북 데뷔골을 못 넣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런 기회를 계속 만들고 또 살려나가는 게 저의 숙제이고,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강상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골을 못 넣어 아쉽다는 게 아니라 득점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정확한 주제파악의 산물이기도 하다. 문전 침투 능력을 갖춘 만큼 공격 포인트로 더 자주 연결할 수 있다면 그의 가치는 더욱 치솟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상윤의 활발함이 골과 도움으로 더 자주 치환된다면 “무조건 대표팀에 갈 선수”라는 동료 전진우의 예상은 곧 현실이 될 수 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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