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피, 살, 뼈를 매개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 가족과의 이어짐은 어떤 경우 끊어내야만 하는 것이지만, 이를 끊고 다시 태어나는 일은 또 다른 피를 부를 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 된다. 시의 화자는 그래서 '언어'라는 피를 대신 흘리는 듯하다. "범죄자"이자,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취조실)에 대한 문장들을 비롯해 가족들이 짊어진 언어들에 피가 낭자하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발화가 이어지는 1, 2부와 달리 3, 4부에는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사유가 이어진다. 함께 실린 산문 속 시와 솔직함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도 최근 시의 경향에 관한 생각을 자극한다. 피처럼, 햇빛처럼 말이 쏟아진다. "치사량의 침묵"을 뚫고 '아가리'를 벌리고 멀리 전진하는 시인의 말들을 계속 지켜보고 싶게 된다.
■ 햇빛의 아가리
윤초롬 지음 | 아침달 펴냄 | 152쪽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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