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어릴 때 엄마 아빠가 다투는 모습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1933년 3월 5일, 오후 무렵이었어요. 그때 나는 5살밖에 안 된 꼬마였지만 그날의 그 장면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 아빠는 계속 똑같은 말로 엄마를 설득하려고 애를 썼어요. <7쪽>
“여보 리젤로테, 잘 생각해 봐. 히틀러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니까.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반드시 히틀러를 뽑아야 해. 그가 독일 국민 모두에게 일자리를 줄 거라니까. 그래야 우리들이 조국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테고.” <7쪽>
엄마가 아빠에게 큰 소리로 대답하는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에곤, 나는 내가 원하는 후보를 찍을 거예요. 당신한테 나처럼 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나한테 아무 말 하지 말아요. 알겠죠?” <8쪽>
그날 저녁을 먹고 난 뒤, 아빠는 안락의자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앉았어요. 선거 결과를 발표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기 위해서였지요. 아빠의 얼굴 표정이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투표자 절반 이상이 아빠와 같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에요.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에서 나치당의 승리를 선언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을 때 아빠는 라디오 볼륨을 한껏 올렸어요.
“국민 여러분, 우리는 복종하는 국민을 원합니다. 그러니 복종하십시오. 우리는 강한 국민을 원합니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 독일 만세!” <10쪽>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가만히 나를 내 방으로 데려다줄 뿐이었어요. 엄마는 고개를 숙여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내 아가 잘 자.”라고 속삭여 주었지요. 내 뺨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10쪽>
1933년 4월 20일은 아돌프 히틀러 총통의 생일이었어요. 도시 전체에 하켄크로이츠가 그려진 나치 깃발이 나부꼈어요. 상인들은 자신의 상점에 작은 히틀러 조각상을 진열했어요. (...) 그날 나는 길가에서 혼자 놀고 있었는데, 마르첼 공장에서 일하는 아저씨 한 분이 소시지 가게 앞에 멈춰 섰어요. 그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히틀러 조각상을 가리키며 낄낄거리더니 크게 소리쳤어요.
“하하하. 저 꼴 좀 봐. 소시지와 순대와 돼지 뒷다리 사이에 떡하니 버티고 있네.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군 그래. 하하하!”
그런데 아저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갈색의 나치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 떼 지어 오더니 아저씨에게 달려들었어요. 그러더니 마구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해 대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쳤어요.
<12쪽>
■ 아빠,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
디디에 데냉크스 지음 | 페프 그림 | 정미애 옮김 | 봄나무 펴냄 | 44쪽 | 14,000원
[정리=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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