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처음부터 미술품의 목적을 가지지 않은 평범한 물건이 갤러리의 이름을 업고 전시품으로 전시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일. 무시한다. 있는지도 몰랐다.
이. 물건에 대한 개인의 기억을 떠올린다.
삼. 갤러리라는 문구를 보았고 예술로 인식한다.
사. 소방관에 대해 환기한다.
을지로 지하상가 통로다. 소방관이 입었던 옷과 장비들이 해체되어 진열되어 있다. 이런 류는 규모가 있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규모를 가진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전시되어 입장료를 지불하고 본적이 더러 있다. 여기에선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 언제든 관람할 수 있다. 다만 투박하게 진열되었으며 구경하다 행인들의 앞길을 막을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재밌었는데 시시했다. 왜 그랬을까?
일.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이. 문구와 타이틀이 구려서
삼. 스토리텔링이 안보여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생각하게 된다. 대다수가 갤러리라는 이름조차 낯설어하는 한국에서 이것은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 일상 속 어떠한 균열
소방복과 같은 굉장히 현실적인 물건이 지하철 통로와 같이 일상적인 장소에 전시되었고, 혹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미묘한 이질감을 동반한 작은 이탈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 기억의 매개
예술로 역할되지 못한다면, 소방복, 소방기구, 그 고유의 컬러 등에서 개인이 갖는 기억이 일차적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 무언가에 대한 재조명
최근 산불이 크게 일면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보여주는 헌신에 노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누군가의 노고와 희생과 같은 이타적인 의미가 지속적인 기록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사. 공공성과 예술의 관계
갤러리라고 정확히 명시되어 있는 공간 밖에서도 갤러리라는 이름 하나로 예술의 역할이 가능한지 관찰할 수 있는 실험으로 보이기도 한다.
내년 혹은 오 년 뒤, 십 년 뒤. 평범히 지나치는 그 통로에서의 작은 이질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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