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어렵지 않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면 된다. 가끔 그들과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며 하루의 일과를 나눈다. 청소 당번을 정해 청소를 하고, 꽉 찬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쓰레기통에 새로운 쓰레기봉투를 씌워주는 것이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가끔 거짓을 고할 때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감각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에게 실망스럽게도 그것 또한 무뎌지고 있다. 슬프다. 그리고 행복하다.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어렵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내 옆에서 나와 비슷하게 힘들어하는 순간들을 직면해야 하며 각자의 고민을 자신의 작업대에서 공동 작업대 위로 꺼내 놓아야 한다. 가장 아끼는 이의 고민을 해결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고 그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통해 연결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낀다. 나는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거짓을 고해버리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 버릴 듯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하지만 그 부푼 마음에 힘이 빠져 어딘가에 쌓이고 쌓여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행복하고 슬프다.
나의 작업실에 사는 동료들은 너무나 다르지만, 그들은 왜인지 합이 잘 맞다. 작가들과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꽤 힘들 것도 같은데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각자 서보려고 노력하고 또 기대기도 하며 잘 지내오고 있다. 지금의 나는 중고등학교에도 고민하지 않던 ‘관계’를 고민하고 어려워하며 벤자민 버튼 같은 어른으로 정확히 늙어간다. 나와 과거를 함께한 친구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재미있다고 깔깔거렸다. 무심함은 사라지고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걱정들에 관계와 사람이 곳곳에 껴 있는 게 멋쩍다.
나와 작업실에 사는 동료들은 착하다. 나는 항상 그들을 믿고 싶다. 힘이 되어 주고 싶고 누가 뭐래도 억지스럽게라도 그쪽으로 기울고 싶다. 마음이 기우는 것이 무섭다고 생각하던 시간은 지났다. 혼자 남을 미래를 걱정하는 시간도 지났다. 함께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고 시간에 앞섰던 걱정과 달리 남은 기억들이 예쁘다. 혼자서 못해볼 것들을 결국 해냈다. 그리고 몰랐던 스스로의 허약함과 강인함 모두 알게 되었다. 어느 누가 작업을 하면서 그런 동료를 만날 수 있을까.
세상에 무엇을 하다가도 만나지 못할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작업을 하다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관계’를 고민한다. 그것만으로 큰 복이 아닐까. ‘관계’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나에게 인간을 믿는 것과도 연결되어 한층 사람답게 나 자신을 다독이는 큰 힘이 되어준다.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가 된 것처럼 누군가를 믿게 되었다. ‘적어도 당신만큼은’이라는 그 말에 생각할 수 있는 얼굴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적어도 당신만큼은 내 편이겠지. 적어도 당신만큼은 나를 기억해 주겠지.
동료들에게 힘듦을 토로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누구에게나 솔직한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이들에게는 자주 솔직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이곳에서 가벼워지면서 다른 곳에서 더 무겁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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