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불협화음 이어지며 시민들만 상처
지난 3월 29일 오후 NC 다이노스-LG 트윈스전이 열린 창원NC파크에서 알루미늄 구조물이 추락하며 관중 3명을 덮쳐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초유의 일에 야구팬들은 안전한 야구장을 요구하는 행동에 나섰고, 대대적인 구장 시설 점검과 더불어 후속 안전조치가 이어졌다. 하지만 NC는 여전히 홈구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갑을 관계 된 지자체와 프로야구단
사고 발생 직후 창원시와 공무원들은 사태 수습과 해결책 모색보다는 책임 회피에 바빴다. 창원시와 창원시설공단 수장 자리의 공석 속 문제 해결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고, 도리어 구단에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창원시는 국토교통부가 긴급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자 그제야 태도를 바꿔 합동대책반을 구성하고 안전 점검에 나섰다.
그 사이 NC의 부담은 가중됐다. 한 달 넘게 사실상 ‘원정 생활’을 해야 했다. 막대한 추가 비용이 투입된 것은 물론 경기 일정 역시 꼬였다. 리그 파행이 우려되자 NC는 울산시의 도움을 받아 문수구장을 임시 대체 홈구장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한 창원시는 NC 발표 후 시민을 전면에 앞세워 조속한 재개장을 촉구했다. 창원시의회는 “구단 내부에서 창원시에 대한 정서적 불만이 있는 듯하다”고 감정의 골도 드러냈다.
하지만 창원시가 야구단을 이런 방식으로 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NC 창단 당시 구단 유치를 위해 창원시는 약 1,200억 원 규모의 새 구장 건립, 구장 사용료 면제, 구장 운영권 장기 위탁 등 파격적인 제안으로 NC와 야구계의 환심을 샀다. NC는 창원시의 약속을 믿고 창원을 선택했지만 정작 새 야구장을 지을 때가 되자 창원시는 “사용료 면제 약속은 기존 마산야구장에 대한 것이었다”며 말을 바꿨다. NC는 새 구장 건립비 1,270억 원 중 100억 원을 이미 분담하고도 추가 사용료를 요구받았다. 막대한 구장 사용료를 요구받은 NC는 결국 330억 원(25년)이라는 고액의 사용료를 납부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거액을 내고도 셋방살이하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눈치를 봐야 하고, 그러면서도 이번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피드백조차 받지 못한 셈이다.
이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와 야구단의 비뚤어진 관계는 창원시와 NC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화 이글스도 올해 초 신구장 건설과정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한화는 구장 건설을 위해 건설비용의 25%인 총 518억 6,000만원을 투입하고, 그 대가로 25년간 구장 사용권 및 명명권, 광고권 등을 획득해 이에 따라 ‘한화생명 볼파크’로 명칭을 결정했다. 그런데 올해 1월 갑자기 대전시는 “사용권을 내준 거지 구장 이름 결정권까지 내준 건 아니다”며 구장 이름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로 할 것을 요구했다. 비판 여론에 결국 기존 명칭 사용이 허가됐지만 구단에게는 상처가 됐다.
경기장 둘러싼 갈등 속 심지어 연고 이전도
한편 프로축구 강원FC는 춘천시와 대립각을 벌이고 있다. 올 하반기 예정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홈경기를 치르기 위해선 규정상 춘천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을 활용해야 하는 상황인데, 비용과 시설 이용 등과 관련해 양측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갈등이 심화됐다. 가까스로 합의에 이르렀지만 양측의 소모적인 논쟁에는 앙금이 남았다. 춘천시와 강원의 갈등이 커지면서 춘천송암스포츠타운 주변에 ‘김병지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렸고, 철거가 이루어지지 않자 강원은 지난 5월 3일 수원FC전서 육동한 춘천시장의 출입을 막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를 두고 김병지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강원 구단주인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대신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프로농구에선 전주시를 연고로 삼던 KCC 이지스가 2001년 이후 22년 만에 연고지를 옮겼다. KBL은 “KCC는 전신인 대전 현대를 인수하면서 22년간 전주를 연고지로 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전주시가 체육관 건립 약속을 7년째 지키지 않았다며 홀대와 신뢰 문제 등을 들어 연고지 이전 검토를 밝혀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처럼 갈등의 골이 깊어진 건 새 체육관 건립 문제였다. 1973년 지어진 전주실내체육관의 시설 노후화로 인해 KCC는 지난 2016년에도 이 문제를 들어 연고지 이전을 계획한 바 있다. 하지만 2023년 12월까지 새 체육관을 지어주겠다는 전주시의 약속을 믿고 동행을 이어갔다. 그러나 전주시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구단에 따르면 오히려 체육관 신축을 백지화하고, 체육관 부지에 프로야구 2군 구장을 만들겠다는 뜻까지 통보했다. 결국 KCC는 연고 이전을 추진했고, 부산과 손을 맞잡았다. 전주시는 연고 이전 확정 직후 입장문을 내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팬들의 분노는 떠난 KCC가 아닌 전주시로 향했다.
명확한 기준 체계 필요하다는 지적
프로스포츠와 연고지는 떼려야 뗄 수 없다. 해당 지역을 홍보하는 수단인 동시에, 경제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창원NC파크 홈경기가 열리지 않으면서 지역사회에서 경제난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지자체와 스포츠단의 갈등은 구단을 응원하는 시민과 관계자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건 분명한 부분이다.
이러한 불협화음 중 많은 경우 경기장과 관련된 이유가 가장 많다는 점은 주목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프로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대부분 구장이 지자체 소유고, 운영 주체는 지자체의 시설관리공단이 맡는다. 올 시즌 초 추운 날씨로 인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의 언 잔디 문제 역시 경기장 소유 주체인 서울시설공단의 미온적 태도가 구단과 팬들의 불만을 불러왔다. 홈 팀 FC서울 선수들의 부상이 우려되자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며 결국 대대적인 ‘긴급 복구’가 이뤄졌다.
이처럼 다양한 종목의 프로스포츠단과 지자체의 갈등은, 구단이 자체적으로 경기장을 소유해 직접 관리한다면 이런 문제에서 해방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적 문제는 물론 재정적 규모에서 해외 유명 스포츠구단과 차이가 큰 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시와 구단 간의 더 명확한 기준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 개정을 통해 소유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되 구단이 주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 독일 분데스리가의 많은 구단은 지자체 소유 경기장을 ‘장기 임대(30~50년)’하여 실질적인 운영권을 행사한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지그날 이두나 파크는 도르트문트시 소유지만, 구단이 장기 임대를 통해 경기장 운영을 주도하며 시설 개선까지 책임진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맨체스터 시티의 에티하드 스타디움처럼 지자체 소유이면서 구단이 장기 임대로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델은 존재한다. 인천 유나이티드 축구단의 경우 시로부터 사무공간과 스카이박스, 관중석, 그라운드 등에 대한 사실상 독점적인 위탁 사용권을 받았다. 반대편 공간에는 쇼핑센터와 웨딩홀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은 인천시에 사용료를 내고 있다. 인천축구전용구장 절반은 구단이, 나머지 절반은 시가 운영하는 셈이다. 여기에 축구단은 관리인력 인건비까지 포함된 경기장 관리비용을 인천시로부터 받아 시설 개보수, 정기 점검 등을 축구단이 직접 한다.
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프로 구단을 유치하고자 하는 지자체들의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 제11구단 창단 가능성이 급부상하면서 경기도 성남과 화성시 등 주요 도시들은 이미 기업 연계 및 야구장 확충 계획을 내세우며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장기적 계획과 청사진이다. 선거철마다 달라지는 손익 계산서와 그때마다 달라지는 약속이 계속된다면 지역경제와 한국 스포츠의 상생은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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