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은장도의 무게①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강산 칼럼] 은장도의 무게①

문화매거진 2025-05-22 12:36:08 신고

[강산 칼럼] 루크레티아(Lucretia)의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②에 이어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앞선 루크레티아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은장도’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의 은장도는 오늘날 여성의 정절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금속을 가공할 수 있는 기능은 3세기 시작되어 4세기경부터 금, 은, 구리, 철 등의 세공 기술이 점차 조직적으로 발전하였다. 장도(腰飾)의 등장은 6세기경부터라고 하는데, 그때는 여성의 정절을 위함이 아니라, 여성 남성 상관없이 호신용, 장식용이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철기를 지나 청동기 시절 칼을 만들어 꾸밀 수 있는 세공 기능이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대 왕이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면서 몽골의 문화가 들어와 장도를 옷고름에 차는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특히 삼국시대의 왕릉에서 나온 장도들을 보아도 은장도는 한 뼘도 되지 않은 작은 크기로, 어찌나 작은지 옷고름에 매달고 다닐 수 있는 정도였다. 칼집과 칼자루는 금, 은, 수정, 뿔 등의 각종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패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칼의 보석 정도에 따라 계급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명품 가방이나 명품 시계와 같이 생각하면 되겠다. 은장도를 가질 수 있는 여성은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했다. 

아울러 옷고름에 매달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한 뼘 정도 되는 아주 작은 크기였기 때문에 자결은 쉽지 않았다. 결국 은장도는 여성의 정절과는 상관이 없는 용도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 은장도(https://cdn.munwhamagazine.co.kr/news/photo/202505/4189_6836_3416.jpg


조선 전기의 신속삼강행실도에서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여성은 724명이고 이 중 칼로 자결한 사람은 24명이나, 은장도를 사용하였다는 내용은 없고 어떤 칼을 사용하였는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 이들은 모두 가난한 여인들이라 보석으로 치장된 값 비싼 은장도를 소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을 것.

장도로 자결한 여성이 있다는 내용은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 근거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전해진 바가 없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정절을 지키면 국가에서 열녀나 열부로서 인정해 주었고 열녀비를 세워주기도 주기도 하였다. 

국가가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아내의 정절은 큰 의미를 갖게 되었고, 조선시대 후기로 갈수록 유교적 여성관이 강화되면서 여성의 정절은 점차 더욱더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현재 은장도가 그렇게 전해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 시기를 거치며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치관이 다시 강조되거나 재해석 되는 과정에서 전통과 민족성을 강조하는 담론이 강화되었고, 그러면서 은장도가 정절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가 강화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는 회검(懷劍)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 기모노의 허리띠에 꽂는 칼이다. 이 칼은 일본 여성들이 호신용으로 사용하였는데, 명예가 훼손되면 자결하는 일본의 문화에 더해져 여성들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이 칼을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는 설도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명예가 실추될 경우 자결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는 설이 유력해 보인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성들이 눈물을 흘리며 칼을 목에 대고, “은장도로 자결하여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겠다”고 말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함으로써 우리는 은장도의 용도에 대해 오늘날과 같은 정절의 의미로서 더욱 공고해졌다. 생각해 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실제 은장도로 자결까지 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은장도는 생각보다 너무 작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시대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여성들의 정절, 일본 문화의 유입, 미디어의 발달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은장도가 현재의 이러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로 판단된다.

* 韓國 銀粧刀에 관한 考察, A study on Korea Ornamental Knife, 정광용 (1999), 대한금속재료학회 참고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