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2000년 개관 이래 국내 신진 예술가들의 실험적 전시와 교류의 장이 되어 온 인사미술공간(인미공)이 운영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전시 ‘그런 공간’을 오는 6월 1일까지 진행한다.
‘그런 공간’은 인미공의 25년 역사를 돌아보고, 그동안 이곳에서 생성된 예술적 맥락과 공간의 의미를 조망하는 전시다.
인미공은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예술 지원이 위축되던 시기, 시각예술가들의 창작과 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기획한 공간이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2000년 첫 전시를 연 뒤, 2006년 지금의 원서동 공간으로 이전해 신진작가들의 개인전, 워크숍, 심포지엄, 커뮤니티 기반 프로젝트 등 다양한 실험적 프로그램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도시 재개발에 따른 임대료 상승과 행정 여건 악화 등 복합적 이유로 2024년 6월, 25년의 운영을 마감하게 됐다. 인미공을 운영하는 아르코미술관은 운영 종료 후에도 인미공의 기록과 자료를 아카이빙해 열람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시 제목인 ‘그런 공간’은 그동안 인미공을 거쳐간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공간을 회상하며 “인사미술공간은 그런 공간이었다”고 말한 것에서 착안되었다. 전시는 단순한 아카이브 재현을 넘어서, 공간의 기억과 사라짐, 지속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참여 작가로는 김익현, 박보마, 슬기와 민, 아트-토커 등이 이름을 올렸다.
박보마는 관람객에게 비공개였던 3층 사무실을 가상의 무대로 재구성하며, 공간 자체에 대한 감각을 재조명한다. 김익현은 인미공의 과거 사진을 바탕으로 구성한 영상 작품 ‘바깥에서’를 통해, 공간 내부의 정서와 외부 환경을 시적 리듬으로 엮어낸다. 아트-토커는 큐레이터와 기획자의 시선에서 인미공의 활동 연대기를 시각화한 타임라인 설치를 선보이며, 장소가 만들어낸 역사적 층위를 되짚는다.
전시는 사진, 영상, 설치, 텍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동안 인미공이 수행한 전시, 담론, 커뮤니티 형성의 역할을 되새기고, 예술공간이 한 시대 안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비평적으로 반추한다.
‘그런 공간’ 전시는 단발성 기획이 아니라 퍼포먼스, 심포지엄, 라운드테이블 등 연계 프로그램과 함께 운영된다. 그간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3층 공간 또한 전시 기간 동안 개방되며, 아르코는 이를 포함한 전체 자료를 향후 디지털 아카이브화하여 열람 서비스와 후속 비평 프로그램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인미공에서 생산된 다양한 예술적 시도와 기록을 보존하고 공유하는 한편, 창작실험과 담론생성 기능을 계승할 새로운 공간과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 공간’은 단지 하나의 전시를 넘어, 장소에 깃든 기억과 예술적 실험이 어떻게 역사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아카이브적 제안이자, 물리적 공간의 종료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문화적 지층에 대한 선언이다. 인미공이 닫는 문 너머에서, 또 다른 ‘그런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