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가까운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없어져서 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야 해요.”
서울 한 전통시장에서 장사하는 60대 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현금 거래가 여전한 상권에서 ‘ATM 실종’은 불편한 일상의 단면이다.
디지털 전환이 은행의 효율을 높이고 있지만, 그 그림자에 금융 취약계층이 놓여 있다. 고령층, 소상공인 등이 점차 금융 서비스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이다.
◇ATM·점포 줄어도 불편은 커졌다
ATM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17개 은행의 ATM 수는 2019년 말 3만4737대에서 2024년 1월 2만6680대로 감소했다. 5년 사이 8057대가 사라졌고, 연평균 1600여 대씩 줄어든 셈이다.
점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725곳이 문을 닫았다. KB국민은행이 180곳으로 가장 많았고, 우리은행(171곳), 신한은행(153곳), 하나은행(120곳)이 그 뒤를 이었다.
은행들은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화를 이유로 ATM과 점포를 줄이고 있지만, 그 여파는 취약계층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서울 도봉구 전통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근처 은행이 없어져서 입출금하려면 한참 걸어가야 해요. 장사하다 자리를 비우는 것도 부담이에요”라고 말했다.
◇STM·공동 ATM…대안의 한계
은행들은 디지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고기능 무인기기(STM)’이나 공동 ATM 같은 대안을 내놓고 있다.
STM은 통장·카드 발급 등 일반적인 창구 업무의 80%를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2022년부터 2024년까지 4대 은행의 STM은 200여 대 늘어나는 데 그쳤다. 활용도는 기대에 못 미치고, 유지·운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공동 ATM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강원도 삼척에서 처음 설치된 이후 충남 태안, 경북 청송 등으로 확대됐지만, 입출금에 한정된 제한적 기능으로 금융 접근성 개선에는 역부족이다.
◇정책은 여전히 권고 수준…실효성 부족
금융당국은 2023년 ‘은행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점포 폐쇄 시 사전 영향 평가와 대체 수단 마련, 지역 설명회를 요구하지만, 이를 따르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는 없다.
사실상 은행 자율에 맡겨진 구조로, 정책 실효성은 낮다는 지적이 많다.
◇해외는 법으로 보장…“현금 접근은 권리”
영국은 지난해 ‘현금접근성법(Cash Access Act)’을 도입해, 국민 누구나 일정 거리 이내에서 현금을 입·출금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ATM이나 점포를 폐쇄할 경우 반드시 대체 수단을 마련해야 하며, 위반 시에는 벌금 등 실질적인 제재를 받는다. 디지털 전환과 금융 접근성 사이 균형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 가속, 제도 보완은 시급
은행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필수”라고 말했다. 은행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고, 정부와 금융당국이 함께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전환이 불가피하다면, 금융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일은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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