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루크레티아(Lucretia)의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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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칼럼] 루크레티아(Lucretia)의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②

문화매거진 2025-05-19 12:22:44 신고

[강산 칼럼] 루크레티아(Lucretia)의 선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①에 이어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우리나라 형법은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2012. 12. 18.> ’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구성요건에 폭행이나 협박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당한 강간은 강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싫다고 명백하게 거절했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의 폭행, 협박이 존재해야 인정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그나마 높아진다는 것. 

그렇다면 피해자가 대답하지 않을 경우, 고개만 좌우로 흔들 경우, 잠들어 대답할 수 없는 경우, 웃으며 싫다고 대답하는 경우 등에 대해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였다고 진술하고, 법원에서조차 범죄자의 그러한 진술이 더 일리가 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해당 조항의 보호법익은 ‘성적 자유’ 또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다. 도대체 이 애매모호하게 느껴지는 ‘성적 자기 결정권’은 무엇이냐.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등을 바탕으로 사회공동체 안에서 각자가 독자적으로 성적 관념을 확립하고 이에 따라 사생활의 영역에서 자기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책임으로 상대방을 선택하고 성행위를 할 권리(대법원 2022. 4. 21. 선고 2019도3047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폭행이나 협박이 아니라도 루크레티아와 같이 자신의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강간에 응하게 될 수도 있고 위계적인 권력관계와 속임수로 인하여 강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등 반드시 폭행과 협박이 존재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렇다면 범죄 현장에서 성적 자기 결정권이 침해되었음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보호법익이 폭행, 협박인 데 비하여 성적 자기 결정권이 침해되었음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보니 피해자들은 늘 자신이 강간의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꽃뱀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사회에서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편견이 자리 잡게 되는 악순환을 거치게 된다.  

2023년 6월 일본은 비동의 강간죄를 통과시켜 시행 중이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의 일부 주와 영국, 독일, 스웨덴, 캐나다 등이 동의 여부를 강간죄 판단 기준으로 바꿨다. 이에 발맞추어 우리나라도 2025년 3월 비동의 강간죄에 대하여 발의되어 있는 상태다. 

다시 로마 이야기로 돌아와, 그 후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당장 와달라고 하여 강간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였고, 복수를 부탁하였다. 

“몸은 더럽혀졌지만, 정신은 더럽혀지지 않았습니다. 나 대신 그에게 복수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하고 자결을 택하였다. 

결국 루크레티아의 죽음으로, 강간을 당한 것이 사실이라고 알려졌다. 우리나라로 대입하자면 대표적인 열부(烈婦)가 되어, 정숙하고 현명하며 모범적인 여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추앙받게 되었고,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정숙하고 모범적인 대표적인 여성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 Lucretia, Artemisia Gentileschi, 1623-1625
▲ Lucretia, Artemisia Gentileschi, 1623-1625


기원전 500년의 로마에서 있었던 이야기임에도 이 이야기는 꾸준히 회자되고 정절의 대표적인 여성으로서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자결한 이 여성이 피해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자결을 한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결하지 않았다면 이 여성은 성폭력 피해자가 맞는지 끊임없는 의심과 손가락질을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2018년 미투한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꽃뱀이라는 손가락질처럼 말이다.

일반적인 범죄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자임을 입증하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다. 절도를 당한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신고하면서 피해품이 없어진 사실 이외에, 자신이 가방을 제대로 들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도를 당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가?

그런데 왜 유난히 성폭력 피해자들은 짧은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혹은 늦은 밤 돌아다녔기 때문에 피해자가 되었다는 비난을 받는 것인가? 자신이 정말 범죄의 피해자가 맞다는 것을 입증 루크레티아와 같이 자결로서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해야 하는 것인가?

루크레티아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자결하지 말라고. 피해자가 왜 자결하냐고. 이제는 피해자에게 피해자임을 입증하라고 하는 시선 대신, 이제는 가해자가 행한 범죄 행위를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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