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객원 무용수·서울시발레단 공연…벽의 활용과 음악 돋보여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무용수가 예고 없이 객석에서 등장해 무대에 오른다. 그가 막을 들어 올리자 새소리가 들리고 공연이 펼쳐질 무대가 드러난다. 무용수는 무대 안쪽으로 발을 옮기며 관객을 미지의 세계로 초대한다.
지난 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발레단의 '워킹 매드 & 블리스'는 인간 내면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몸짓들이 펼쳐지는 장이었다.
무대에는 스웨덴 출신의 안무가 요한 잉거의 '워킹 매드'(Walkling Mad)와 '블리스'(Bliss) 두 작품이 올랐다. 요한 잉거는 201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안무상을 받았고 세계 유수의 무용단과 협업한 세계적인 안무가다. '워킹 매드'와 '블리스'의 이번 공연은 아시아 최초다.
먼저 무대에 오른 '워킹 매드'는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소용돌이를 탐구하는 듯한 작품이었다. 무용수들이 고깔을 쓴 채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을 선보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갈망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이 가운데 벽이 주요한 매개체로 활용됐다. 벽은 옆으로 움직이고 무너지고 문이 열리는 등 다채롭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놓인 무용수들은 고독감을 비롯해 여러 감정을 표현했다. 벽 그 자체는 넘어야 할 상징처럼 쓰이는 모습이었다. 두 명의 무용수가 벽을 넘는 것을 두고 펼치는 2인무가 반복해 등장했다.
음악도 극 전개에 주요한 축을 담당했다. 극의 대부분을 담당한 곡은 라벨의 '볼레로'다. 멜로디가 반복되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악기가 합쳐지며 소리가 점진적으로 발전되는 데 맞춰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강렬함을 더해가며 보는 이를 소용돌이 속으로 빠뜨렸다. 아르보 패르트의 '알리나를 위하여'도 활용됐다. '알리나를 위하여'는 '볼레로'와 대조적으로 단순하고 명상적인 선율로 구성된 곡이다. 여기에 맞춰 객원 수석 무용수로 참여한 이상은 영국국립발레단 리드 수석과 이정우 무용수의 2인무가 펼쳐졌다. 밀고 당기기 속에서 끝내 무언가를 놓지 못하는 듯한 이상은의 몸짓이 잔영으로 남았다.
'블리스'는 '워킹 매드'와 상반된 분위기의 무대였다. '미쳐서 걷는다'라는 의미의 '워킹 매드'가 고립감, 갈망 등의 내면을 탐구했다면, '행복'을 뜻하는 '블리스'는 보다 긍정적인 감정에 집중하는 듯했다. 무용수들은 무대를 가로지르며 뛰어다니고 추임새를 넣으며 흥을 드러냈다.
'블리스'도 '워킹 매드'와 마찬가지로 음악이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극의 음악인 키스 재럿의 '쾰른 콘서트'는 1975년 독일의 쾰른 오페라 하우스에서 펼쳐진 공연 실황을 녹음한 곡이다. 당시 공연하기 최악의 조건에서 재럿이 즉흥적으로 연주한 곡이 오늘날까지 명작으로 남았다.
무용수들은 음악에 반응하듯 춤을 추며 음악이 내재한 즉흥성 자체를 표현하려는 듯했다. 피아노 소리가 점층적으로 두터워지면, 무용수들의 숫자가 하나둘씩 늘어나며 군무를 선보이는 식이다. 제각각의 춤을 추던 무용수들이 서로에게 전염되듯 하나의 군무로 합쳐지는 모습은 '블리스'의 백미였다.
첫 공연을 마친 뒤 요한 잉거를 비롯한 창작진들이 무대에 올라 객석에 인사를 전했다.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은 오는 18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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