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는 무능한 인물은 아니지만,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은 도덕적으로도, 명분적으로도 잘못된 일이었고 그의 선택 때문에 공신들의 횡포로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던 만큼 "구국의 영웅"이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세조가 해방 이후 가장 찬양받던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5공화국 시절이었다. 정권의 명분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서 세조는 구국의 결단을 한 영웅이어야만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해방 후를 거치는 과정에서 광해군은 기존의 폭군 평가를 넘어 중립외교 등 긍정적인 해석들이 나오면서 복합적인 평가를 받았는데,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는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활용되어 더 고평가 되었던 적이 있다.
특히 영화 "광해" 이후엔 범국민적인 긍정적 인식이 생겼다. 극중인물 광해를 연기하는 광대 하선이 애민정신과 국가의 안전을 우선하는 마음을 보였을 뿐 극중 광해군은 시종일관 차가운 인물로 그려졌지만, 사람들은 하선을 보고선 "광해가 저런 인물이라고? 역사적 패자가 폭군이라는 오명을 쓴 것이구나"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또한 광해 감독이 밝혔듯이 가공의 인물 하선은 실제 인물을 참고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 인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호감을 광해군에 투영하기도 했다.
문제는 세조와 광해군 사례에서 보듯이 역사에 정치적 논리를 노골적으로 투영하고, 엄연히 다른 역사적 인물과 현대 인물을 엮는다면 거기서 생기는 오류는 필연적이며, 바로잡기도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세조는 능력이 없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계유정난이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결단은 아니었다. 애초에 "구국"이라는 건 나라가 위태로울 때 구했다는 소리인데 단종시대는 그런 국난의 상황이 아니었다. 세조가 반역을 꾸미던 역적 김종서 때려잡아서 단종을 구했다고 프로파간다 퍼뜨리던 조선 때면 "국가를 구했다"고 해석할 수는 있겠다.(심지어 조선 때도 세조를 늘 긍정적인 면으로만 바라보진 않았다)
광해군도 행적을 보면 무리한 궁궐 사업과 대규모 옥사로 국력을 소모시킨 왕이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둘을 다른 위인들과 비교했을 때, 최소한 위의 해석이 유행하던 시절엔 아무도 그 논리를 쉽사리 반박하진 못했다. 더이상 둘에 대한 연구는 역사의 영역만이 아닌, 정치적 논리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행동은 매우 잘못됐다. 역사왜곡을 정치의 수단으로 쓴 것이니까. 만약 수상소감이 현재와 다른 내용의, 다른 정치 진영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었어도 안 좋게 평가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간에 정치가 엮이면 더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