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지난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때 보았던 호퍼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았다. 그때는 시간이 없어서 중간부분만 봤지만 스크린이 커서 좋았고, 지금은 전체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년말에 개봉했고, 이제 지니tv로 봤다.
호퍼는 책읽기를 좋아했단다. 밤이면 아내 조에게 책을 읽어주었는데 『전쟁과 평화』였다고 하니 영화 <책읽어주는 남자> 도 생각났다. 읽지 않은 책을 같이 읽어나가는 연인사이의 수평적관계가 아름다웠다. 어떤 책을 읽어주느냐는 둘 사이 관계의 위치를 말해준다고 했다. 그러나 다큐 속 아내 조의 입장에서는 호퍼가 읽어주는 『전쟁과 평화』 가 다소 일방적이었다는 것 같다. 책읽어주는>
사이가 좋아보이지는 않아도 세월을 함께 보낸 늙은 부부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애증의 부부는 공원 의자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외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그것, 조의 삶에서 사라져버린 그 아쉬움이 끝내 안타깝다.
말년으로 갈수록 1년에 한두점의 작품만 완성할 수 밖에 없었던 호퍼의 사유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도 되었다. 그의 작품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겠다. 세심한 뉘앙스까지 고려한 탐구와 직관의 조합말이다.
어쨌든 다큐를 통해 호퍼 작품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며 그가 그림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늘의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하는 작가의 노력을 통해, 누구든 나의 삶과 사유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게 하다는 점에서는 얼마나 훌륭한가.
Copyright ⓒ 저스트 이코노믹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