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문화산책27] 시그리드 누네즈 『그해 봄의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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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향의 문화산책27] 시그리드 누네즈 『그해 봄의 불확실성』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05-03 08:02:20 신고

    '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한동안 나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건 그해 봄의 많은 불확실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왜 평생 애도하며 사는 기분인지 알고싶다.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남아있고 도무지 사라지려 하질 않는다."

시그리드 누네즈(1951~)를 다시 만났다. 우리나라 예술가들에게 세월호가 그냥 건널 수 없는 숙제가 된 것처럼, 서구 작가들에게 코로나는 큰 흔적을 남겼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책과 영화 <룸 넥스트 도어> 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를 돌아보았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개인에서 확장된 사회적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읽어내야 한다.

​날마다 봄에 산책을 나간다는 문장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래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움을 보여주는 봄의 에너지를 두루 느껴보아야 한다. 봄산책의 묘미다. 오늘 아침도 다른 방향으로 한바퀴 돌았다. 얕은 산 느티나무도, 가로수 은행나무와 메타세콰이어도 연한 잎들이 꽃처럼 피었다. 강렬한 철쭉도 피었다. 화르르 봄이 끝난 느낌이다. 꽃으로 화려한 거리보다는 연한 꽃들이 피어나는 숲이 더 좋은 이유다. 불확실한 봄을 통과하는 방법이다.

​이 소설의 문장은 좀 이상하다. 가볍고 두서없다가 서사가 이어지기도 한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본의 스타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읽기에 속도가 붙은 것은 꽃이름을 가진 친구들의 개인 서사가 늙음과 함께 굴러가기 시작했을 때, 맥락이 파악되었다. 존 바에즈를 좋아했던 친구 릴리의 장례식에서다. 릴리와 그의 젊은 날을 지배했던 남자 이야기, 아이리스의 앵무새 유레카와 거기서 만난 젊은이 베치를 통해 통찰해보게 되는 글쓰기와 현실에 대한 질문들.

​그러다 도달한 곳은 시작이었던 버지니아 울프였다. 결국 이 소설의 향방을 알수 없게 마구 뻗어나가는 줄기는 버지니아 울프의 그것이었다. 의식의 흐름. 도대체 알 수 없음이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선명해졌다. 뿌려놓은 조각난 사실들과 경험, 사유와 질문들이 모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뿌옇게 흐렸던 코로나 시대의 브레인 포그처럼 말이다. 거기 안에서 일어나는 사유와 통찰들은 읽는 자의 몫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시각을 통해 나도 또하나의 불확실한 봄을 이렇게 통과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반가운 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이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로 이어졌다는 것. 개인 이야기가 시대적인 집단 자서전으로 이어졌고, 조르주 페렉의 <나는 기억한다> 도 있다는 것을. 그 맥락들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음에 즐겁다. 멋진 연애 소설쓰기가 안되는 이유도 알았다.

​시그리드 누네즈는 곳곳에서 질문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 쓰고 싶은가.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불확실한 팬데믹의 시대를 통과하는 진짜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쓰기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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