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
시장은 겁쟁이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버텨야 한다. 눈앞의 모니터에는 일주일 내내 횡보만 하다가 기어이 –2.1%를 기록 중인 B코인 차트가 떠 있었다. 저점이라고 판단해서 들어갔는데 거기서도 더 떨어질 수 있다니. <7쪽>
일단 앱스토어에서 평점이 가장 높은 알바 구인 앱을 찾아 설치했다. 쿠팡 앱을 열어 매트리스도 검색했다. 호텔에서 쓴다는 크고 두툼한 매트리스부터 한 명만 누워도 꽉 차는 심플한 매트리스까지 크기와 가격대가 다양한 매트리스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15쪽>
만약 술자리가 시작된 지 한두 시간 뒤쯤 막 2차를 가기 직전에 합류한다면 1차에서 나온 비용은 안 내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꽤 괜찮은 계획이라는 생각에 만족스러워하며 이력서를 쓰기 위해 집에서 삼 분 거리에 있는 피시방으로 향했다. <29쪽>
월세 30만 원에 관리비는 5만 원, 전기 요금은 고지서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대략 2만 원으로 잡고, 통신비는 현재 요금제로 3만 원이니 모든 비용을 합치면 40만 원. 이 40만 원이 매달 발생하는 고정 비용이자 내가 치러야 할 방어전인 셈이다. <87쪽>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고 싶은 거지. 진지하게 진로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꿈 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지금은 그저 매달 월세 방어전을 잘 치르면서 등록금 마련할 일이 더 급했다. 그러니 언감생심 내일을 꿈꾸기보다는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100쪽>
몇 번의 잔소리를 더 들은 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다. 빨리 돈 벌어서 제 몫을 하고 싶다. 그러면 나도 엄마도 서로 신경 쓸 필요 없이 제자리걸음이나마 각자의 인생을 살 수 있을 텐데. <120쪽>
잠깐 차트만 본다는 게 벌써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저녁 먹기 전 남은 시간 동안 과제를 끝내기 위해 전공책을 꺼냈다. 본격적으로 과제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다시 코인 앱을 확인했다. <167쪽>
나를 선택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 주고 싶었다. 배신감, 열등감, 박탈감, 자괴감……. 비참함에도 이렇게 종류가 많다는 것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193쪽>
위협을 흉내 내던 모습부터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면서 자신을 과시하던 모습까지. 찬호는 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어쩌면 생존하기 위해서 스스로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그것을 말릴 권리 따위는 없었다. <229~230쪽>
얼굴 위로 무언가 날아와 앉았다. 손사래 치며 뿌리쳐도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양손을 들어 박수치듯 잡고 나서야 겨우 잠잠해졌다. 대체 뭔가 싶어서 손바닥을 펼쳐 들여다봤다. 좁쌀 크기 정도의 작은 초파리였다. <257쪽>
적금까지 깨면서 물타기를 했건만 상장폐지 확정이라니, 전부 다 끝났다. 지금까지 투자로 번 300만 원도, 적금을 깨서 넣은 360만 원도 지금 이 순간 반토막이 났을지도 모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263쪽>
“왜냐면 찬호가 가장 무서워했던 게 잉여인간이 되는 거였거든. 대학도 못 가고,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고, 평범보다 낮은 기준에서 살면서 세상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잉여인간.” <275쪽>
『초파리』
이주형 지음 | 출판사 핌 펴냄 | 306쪽 | 16,000원
[정리=이자연 기자]
Copyright ⓒ 독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