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한국과 미국의 25% 상호관세 협상이 수일 내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국 맞춤형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하고 양자 협상을 통한 타협 가능성을 내비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협상을 이끄는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14일(이하 현지시간) "한국과 다음 주 무역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모든 역량을 결집해 관세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내주 방미해 미국 측과 본격적인 관세 조정 협상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으며, 산업계도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 등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방미단을 꾸렸다.
하지만 미국이 관세 협상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그 시간표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일본 이시바 총리는 미국과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또 권한대행 체제하에서 트럼프 정부와 제대로 된 협상을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한편, 한미 전문가들은 한국이 조선·방산과 에너지, 인공지능(AI)·반도체 분야의 협력으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美 재무 "다음주 한국과 협상.. 빠르게 진행될 것"
한덕수 "빠른 시일내에 구체적 내용 도출".. 속도전 의지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국가별 상호관세가 시작된 지 13시간여 만에 중국을 제외한 70여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 관세만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는 국가별 관세 협상을 진행해 최종 관세율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지난주 베트남과 관세 협상을 진행한데 이어 한국과의 협상은 다음 주 중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14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지난주에는 베트남, 수요일(16일)에는 일본, 다음 주에는 한국과의 협상이 있다"면서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국 정부가 한국을 비롯해 영국, 호주, 인도, 일본과의 협상을 우선하고 있다고 14일 보도했다.
이에 우리 정부도 관세 협상 준비에 착수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14일 경제안보전략TF 회의에서 "(한미) 양국 간 협상을 위해 산업부 장관을 중심으로 협상단을 구성하고, 빠른 시일 내 방미를 추진해 본격적인 협상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안덕근 장관은 이르면 내주 워싱턴DC를 방문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미국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미국의 대한국 관세 조정 협상에 나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번 협의에서 안 장관은 미국 측의 최우선 관심사인 무역 균형 추구를 위한 우리 측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상호관세 면제 또는 완화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관세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 짓겠다는 '속도전'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 대행은 "하루 이틀 사이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와 관련해서 한미 간에 화상 회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모든 분야에서 한미가 협상 체계를 갖추고,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내용을 도출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을 통해서 해결점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도 한국무역협회를 중심으로 업종별 단체 등 7개 단체가 방미단을 구성해 관세 협상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전날 워싱턴 DC로 떠난 이번 방미단은 이인호 무역협회 부회장과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부회장, 이경호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등 부회장단이 주축이 됐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한국원자력산업협회 등도 참석했다.
방미단은 오는 17일까지 워싱턴 DC에서 미국 정부 주요 인사와 상·하원 의원, 싱크탱크 핵심 인사 등을 두루 접촉해 한미 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관세 조치로 한국 기업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아웃리치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아울러 다음달 중순에는 윤진식 무역협회 회장과 무협 회장단으로 구성된 대미 무역사절단이 워싱턴 DC를 찾아 상호관세 등에 대한 한국 기업·산업계 입장을 설명할 계획이다.
권한대행 체제, 협상력 한계 분명
민주 "韓대행, 협상 전면 나서면 안 돼…국회와 협의해야"
정부가 관세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인 현 정부의 협상력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미 국채 금리가 요동치자 트럼프 정부가 부랴부랴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 만큼 '지연 작전'을 펼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일본 이시바 정부도 '신중모드'에 돌입한 상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14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빠르게 협상을 매듭지으면 좋다는 방식의 생각은 아니다"라고 말해 성급하게 합의하지 않겠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미국이 협상 의사를 밝힌 약 70개국 가운데 한국과 일본 등 상대적으로 협상 결과 도출이 용이한 동맹국과 우선 협상을 타결짓겠다는 방침인 만큼 일본과 협상 결과를 본 후에 협상 방향을 조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더불어민주당도 한 대행을 향해 관세 협상에 성급하게 나서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를 통상 협상의 최우선 대상국으로 꼽았다고 한다.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 의장은 "이러한 미국의 의도와 판단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권한대행은 마지막 소명이라면서 협상을 서두르려 한다"며 "권한도 책임도 취약한 대행 정부가 막대한 국익이 걸려있는 관세 협상에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협상을 서두르다 결국 퍼주기 협상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막대한 국익이 걸려있는 중대한 통상 협상은 국회와 협의 하에 진행해야 한다"며 "국회 통상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전문가들 "조선·에너지·AI 협력해야"
한미 전문가들은 미국과 협상에서 한국이 조선·방산과 에너지, 인공지능(AI)·반도체 분야의 협력으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미협회가 15일 개최한 '한미 산업협력 콘퍼런스'에서 조선·방산 분야 전문가들은 미국의 함정 노후화와 건조 능력 부족을 지적하며, 유지·보수·정비(MRO)와 건조 분야에 양국의 협력 기회가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로버트 피터스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한국과의 MRO 협력은 전시에 미국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빠르게 전투함을 수리할 수 있다는 의미와 평시에는 미국 조선소의 여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정우만 HD현대중공업 상무는 "향후 30년간 364척의 새 함정을 건조하겠다는 미 해군의 계획은 현재의 건조 역량을 보면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라며 "미국 함정의 MRO 지원을 본격화하고 건조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해 나간다면 미 해군의 전투준비태세 향상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액화천연가스(LNG) 대미 수입 확대와 원전 협력 강화 방안이 제시됐다.
트럼프 1기 에너지부 차관을 역임한 마크 메네즈 미국에너지협회 회장은 "한국은 LNG를 전량 수입하는 상황인 데다 대미 무역흑자 완화를 목표한다면 미국산 LNG 수입 확대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며 "원자력이 양국의 공동 에너지 전략에서 핵심 축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도 "미국의 LNG는 과잉 상태"라며 "한국은 수입량을 대폭 늘리면서 수입 가격을 일정 부분 낮추는 전략을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와 반도체 분야 협력도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창욱 BCG MD파트너는 "미국이 선도하는 AI 모델을 한국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게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반대급부로 AI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할 때 설비투자 비용을 분담하거나 GPU를 임대하는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 예 마이크로소프트 정책협력법무실 아시아 총괄대표는 "한국은 AI 학습의 필수적 자원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주요 공급국"이라며 "한국 반도체 제조업체들과의 협력이 강화될수록 AI 기술의 확산과 적용 속도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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