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메디먼트뉴스 이혜원 인턴기자] 2009년, 대만에서 처음 개봉한 영화 ‘청설(聽說, Hear Me)’(2009)는 청각 장애인이자 수영선수인 언니와 그런 언니를 보조하는 여자 주인공 동생이 함께 산다. 수영장에 배달을 하는 남자 주인공 ‘티엔커’가 동생 양양을 보고 한눈에 반해 사랑을 하는 아야기이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 따뜻한 이야기가 한국에서 다시 피어난다. 바로 한국판 ‘청설(Hear Me : Our Summer)’(2024)이다. 원작이 가진 순수한 감성과 따뜻한 시선은 그대로 두되, 부제를 추가하여 그 계절만이 주는 느낌을 추가하고, 한국적 정서와 리듬을 더해 더욱 촘촘하고 부드러운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청년 용준(홍경)이 도시락 배달 중 수영장에 들렀다가, 청각장애인 동생을 위해 수어로 응원하던 여름(노윤서)을 우연히 만나며 시작된다. 여름은 동생 가을(김민주)의 수영 연습을 돕기 위해 일상 대부분을 헌신하는 인물이다. 소란한 세상과는 조금 떨어져, 자매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용준은 그런 여름의 모습에 이끌려, 수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에 다가간다.
‘청설’은 대사를 절제하고, 시선과 몸짓, 침묵과 수어를 통해 감정을 전한다. 언어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기존의 로맨스 영화들과는 결이 다르다. 수어를 모르는 용준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려 애쓰고, 그런 그의 진심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드러난다. 관객은 어느새 수어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울림을 가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이 영화가 ‘청각 장애인’에 집중하기보다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청각장애는 단순한 배경이지, 누군가를 동정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조금씩 다가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고, 결국엔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이 과정이 굳이 비극적이거나 극적이지 않아서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 같은 진정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노윤서는 수어와 표정만으로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냈고, 홍경은 묵직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용준이라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들의 연기가 만들어내는 감정선은 관객의 마음을 찌르지 않고, 어루만진다.
‘청설’의 서사는 복잡하지 않고 다소 단순함에 속한다. 그리고 단순함이야말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말로만 전하려 하고 있었을까?”,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듣는 시늉만 해온 것은 아닐까?” 영화는 거창한 메시지를 외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묻는다. ‘진짜 소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물음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청설’은 수어가 들려주는 사랑의 언어, 말없이 전해지는 진심. 이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듣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다시 가르쳐준다. 그리고 말보다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더 진실하다는 것을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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