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도 있었습니다. 처음과 달리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한 학생들의 변화를 보았을 때 특히 그랬습니다. 학기 초에 “페미니스트는 똥”이라면서 수업시간 내내 다리를 달달 떨며 노려보기만 했던 학생, “페미는 사회악”이라던 학생, “이건 내가 알 필요 없는 얘기”라며 딴짓만 하던 학생, “내 힘으로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으니 이런 얘기는 무능력자들이나 듣는 거”라고 외면하던 학생이 학기 말이 되면 곁눈질로라도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7, 8쪽
그런데 젠더 갈등, 실체가 있는 말인가요? 어디에 쓰이는지 살펴보니 안 갖다 붙이는 곳이 없더군요. 스토킹도 젠더 갈등이고, 별거 시 남편이 아내를 폭행해도 젠더 갈등이고, 가정 폭력이 일어나도 젠더 갈등이고, 성폭력·온라인 괴롭힘 등이 일어나도 젠더 갈등이고, 고용 불평등도 젠더 갈등, 직장 내 괴롭힘도, 성희롱도 젠더 갈등이랍니다. 청년 세대 문제, 경제 불평등 문제에까지 갖다 붙이네요. 심지어 저출생 문제 원인도 “페미니스트들이 유발한 젠더 갈등”이랍니다. 이런 만능어가 세상에 또 있을까요? -130쪽
【투데이신문 박노아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6년 넘게 페미니즘을 강의해온 오혜민 교수가 신간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를 출간했다. 이 책은 저자가 강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받아온 질문들과 그에 대한 치밀한 답변을 담고 있다. 당신은>
“성평등을 얘기하면서 군대 얘기는 왜 안 하느냐”, “여자대학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 아니냐”,“여성 인권만 얘기하지 왜 성소수자 얘기까지 꺼내느냐”와 같은 페미니스트라면 지긋지긋하게 들었을 익숙한 질문들에 저자는 단순히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날카롭고 솔직한 답변을 제시한다.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에서는 온라인상에 떠도는 ‘상상 페미’에서 비롯된 질문들을 다루고, 2장 <당신은 저에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그럼 20000> 에서는 페미니스트라면 누구나 지겹도록 들어왔을 질문들에 답한다. 3장 <오해 좀 풀리셨나요?> 에서는 최근 온라인상에서 자주 논의되는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오해> 당신은> 상상력이>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질의응답 형식의 페미니즘 입문서지만, 저자가 밝혔듯 내용은 쉬워도 마냥 친절한 말투로 쓰이지는 않았다. 페미니스트들이 상대가 불쾌하지 않게 ‘배려’하면서 설명해야 할 이유가 없고, 누구나 여러 감정을 가진 복합적인 존재이듯이 저자 역시 그런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출판사 관계자는 “페미니스트로서 자녀나 학생들 혹은 주변 지인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는다면 좋은 답안지로 삼아도 될 책”이라고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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