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강산 작가] 1633년에 그린 여성 작가 유디트 레이스터(Judith Leyster 1609~1660, 네덜란드)의 자화상이다. 이 그림을 보자마자 처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그 시대에 여성 화가가 있었다니?
이다지도 자유로운 무드의 자화상을 그렸다니?
화가로서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데?
그림을 그리다가 누군가 불러 대답을 하려는 듯 의자에 한쪽 팔을 걸쳐 올린 모습,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살짝 벌어진 입과 미소, 스스럼없는 눈빛은 그녀가 화가로서의 자신감을 보여주고도 남는다. 무드 뿐 아니라 왼쪽 한 손으로 쥔 수십 자루의 붓은 그녀의 직업이 당연히 화가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림으로 붙어볼래. 다 이길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녀가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시대 여성으로서 20세에 이미 자신의 작업실을 갖고 있었고 길드에 가입해 활발한 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요즘도 이런 작가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디 가도 화가로서 명함을 당당하게 내밀 수 있는데, 1600년대 여성 작가로서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과 명성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녀는 살아생전 그의 스승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프란스 할스와의 소송에 휘말리게 된다. 그녀에게 그림을 배우는 학생 중 하나가 그녀에게 이른바 3개월 치 수업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채 할스에게 가버린 것이었다. 길드의 허락이 없이 이런 상황들이 이루어질 수 없던 상황이었기에 할스는 학생을 레이스터에게 돌려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결국 이는 소송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학생은 1개월 치의 수업비만 지급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이 둘의 경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쟁이라기보다는 할스의, 살아생전 레이스터의 학생을 뺏은 연장선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레이스터는 죽고 난 후 후대에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녀의 작품이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할스의 작품이라고 여겨졌던 많은 작품이 1세기가 흐르고 난 후 사실은 레이스터의 작품인 것으로 밝혀지게 된다. 작품에 할스로 서명된 부분이 사실은 유디트 레이스터의 ‘JL’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스터는 할스의 그림 스타일을 모방한 정도의 능력밖에 되지 않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며 그녀의 능력은 다시 재평가받게 되었고 지금은 당대 드문 여성 화가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작품 속 모델은 희극인 Peeckelhaeringh이다. 그는 술에 취한 연극을 하는 광대로 당시 유명했을 것을 추측된다. 모델은 술에 취한 얼굴로 밝은 표정이며 빈 잔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레이스터가 그렸음에도 할스의 작품으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1927년 Juliane Harms라는 연구자가 레이스터의 작품으로 인정하였다.
17세기 많은 여성 작가들이 길드에 가입했다고는 알려져 있으나 이렇다 할 작품들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레이스터의 이러한 기록은 대단하게 여겨진다. 그럼에도 그녀가 죽은 후 자신의 작품이 다른 사람, 그것도 소송까지 했던 할스의 작품으로 알려졌다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