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외 원조의 미래 … 미국이 나가고, 중국이 차지하나?

글로벌 대외 원조의 미래 … 미국이 나가고, 중국이 차지하나?

BBC News 코리아 2025-03-03 10:15:04 신고

3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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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지뢰 행동 센터'의 지뢰 제거 전문가가 스바이 리엥 지역에서 불발탄을 조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 원조가 갑작스럽게 해체되면서, 누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인지에 대한 전 세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책 및 원조 분야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관련 전담 기구로서 오랫동안 해외 원조 사업을 맡아온 국제개발처(USAID)가 물러난 자리에, 개발을 소프트파워 수단으로 여기는 중국이 들어올지 궁금해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캄보디아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캄보디아는 지난 수십 년간 국제사회가 나서 현지 정부를 도와 과거 전쟁 시기 묻힌 지뢰 제거에 힘쓰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지뢰는 여전히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 원조를 중단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지뢰 제거를 주관하는 '캄보디아 지뢰행동센터(CMAC)'는 중국이 오는 3월부터 1년간 440만달러(약 64억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이 갑작스러운 미국의 공백을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할 기회로 삼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전역의 개발도상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조치다.

이후 헝 라타나 CMAC 대표는 미국으로부터 "미 정부가 대외 원조 정책을 검토하는 동안 자금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캄보디아에서 중국이 보인 즉각적인 대응은 주목할 만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중국이 미국의 원조국 역할을 대신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도, 중국이 미국의 공백을 메울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더라도 중국은 서방의 쇠퇴를 바라는 장기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중요한 입지 중 하나를 축소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시진핑 주석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다.

전혀 다른 중국의 대외 원조 방식

사실 중국은 이미 해외 원조 분야에서 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 & 메리 대학'의 '에이드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2001~2023년 기간 미국은 대외 원조에 1조2400억달러를 지출한 것에 비해 2000~2021년 기준 중국은 1조 3400억 달러를 쓰며 1위 원조국으로 거듭났다.

중국의 대외 원조비는 투자와 인프라 건설을 통해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겠다며 2013년 시 주석이 내놓은 대표적인 외교 정책인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8년에는 중국판 USAID인 '중국 국가국제발전합작서(CIDCA)'를 설립하고 대외 원조 활동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중국의 대외 원조 모델은 미국과는 전혀 다르다. '에이드데이터'에 따르면 2012~2021년 기준 미국이 제공한 원조는 약 80%가 상환을 기대할 수 없는 보조금 형태였으나, 중국의 원조에서 보조금은 3%에 불과했다.

대신 중국은 주로 대출이나 수출 융자 형태로 제공하며 개발도상국들의 최대 공식 채권국이 되었다.

아울러 보건 및 인도주의적 구호에 중점을 둔 미국의 원조와 달리 중국은 역사적으로 대규모 인프라, 에너지, 광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해왔다.

직접적인 경제 지원보다는 인프라를 통한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중국의 접근 방식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이를 두고 중국은 '남남 협력'이라 부르며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개발도상국) 간 자원과 지식 교류에 집중한다.

중국은 서방의 원조 모델과 거리를 두며 서방이 원조를 이용해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한다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원조가 미국이 자금을 지원할 때 기본 조건 중 하나였던 인권 기록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도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의 제재를 받는 국가이지만 중국의 개발 기금이 가장 많이 향하는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울러 중국은 유혈 내전으로 미국이 원조를 중단한 후에도 스리랑카에 대한 인프라 투자를 이어 나갔다.

중국, 원조국 역할 맡을 준비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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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잔잘리마 국내 난민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USAID의 지원 품목 중 하나인 밀가루 포대를 옮기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중국이 USAID의 역할을 대체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에이드데이터'의 정책 분석 책임자인 사만다 커스터는 "중국은 서방 정부와 같은 방식으로 원조 자금 공백을 메우지 않을 것"이라면서 "근본적인 철학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철학 외에도 물류와 운송이라는 핵심 과제도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수년간 비정부기구, 지역사회, 현지 정부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광범위한 글로벌 원조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인프라가 부족하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의 징동 위안 박사는 "이러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는 수십 년은 아니더라도 수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장애물은 경제적 제약이다. 중국의 연간 원조 지출은 2016년 경제 호조에 힘입어 1250억달러(약 182조 5,000억원)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2021년에는 2008년 수준으로 돌아갔는데, 경제 둔화의 영향도 있었다.

국내 경제가 침체된 상황이기에 중국 정부는 자국민들도 어려운 마당에 왜 해외 인도적 지원을 늘려야 하는지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미 존스홉킨스대학교의 데보라 브라우티감 교수는 "중국의 경우 내부적으로 현재로서는 이러한 지출을 추진할 만한 원동력이 없다"고 했다.

물론 중국과 미국의 국제 원조가 한쪽의 기여도가 낮아진다고 해서 다른 쪽의 기여도가 바로 커지는 시소(see-saw) 구조는 아니다. 오히려 최근 역사를 보면 중국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크게 증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지난 2023년 USAID는 부정부패를 문제 삼아 에티오피아에서의 식량 원조를 중단했다. 당시 중국-에티오피아 간 인프라 관계가 탄탄했음에도 중국의 식량 원조량은 이후에도 그리 많이 늘어나지 않았다.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의 살바도르 산티노 레길메 부교수는 "중국이 개입할 기회는 많았다"면서 "그러나 대부분 그저 구두적인 차원에 그쳤고, 실질적인 프로젝트 측면에서 중국은 큰 공백을 채운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긴 호흡의 게임: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 전략

중국은 USAID의 인도주의적 지원 공백을 완전히 채우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전략을 통해 꾸준히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USAID 또한 중국의 이러한 접근 방식을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 팀을 이미 구성한 바 있다.

USAID에서 중국 이슈에 대응했던 프란시스코 벤코스메 전 수석고문은 미국의 원조 중단이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전체 생태계"가 붕괴되었으며, 중국이 이미 네팔과 캄보디아 같은 USAID 파트너 국가들에게 손을 뻗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켜고 끌 수 있는 전등 스위치 같은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내에서도 벤코스메 고문의 이러한 우려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요 원조가 갑자기 중단되면서 이에 의존했던 많은 국가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중국은 자신을 단순한 파트너가 아닌 "전 세계가 선호하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에이드데이터'의 커스터 책임자는 "중국은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이득을 취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중국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말뿐만이 아니라,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인프라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개발도상국의 신뢰를 얻고 있다. "간섭하지 않는" 파트너임을 내세운 중국은 여러 국가에 자국의 개발 모델을 성공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아프리카 전역에 경기장을 건설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경기장 외교'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초대형 항구 건설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주요 개발 프로젝트의 최우선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개발 자금을 지원할 때 내세우는 중요한 조건이 있으니, 바로 대만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현재 70개국(주로 개발도상국)이 이 원칙을 지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금융 외교가 대만에서 중국 본토로의 외교적 이동을 촉진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브라우티감 교수는 "중국 지도자들이 오랫동안 원했던 다극화된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USAID의 활동 중단 이후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글로벌 원조국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전까지 중국은 장기적이고 꾸준한 전략을 통해 보상을 얻을 준비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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