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이집트 작가 와엘 샤키(54)는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서구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 특히 중동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보여주는 작업을 해왔다.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이집트관에서는 영국의 이집트 지배를 불러왔던 우라비 혁명(1879∼1882)을 소재로 한 뮤지컬 형식의 '드라마 1882'를 선보였고, 인형극 형식의 '카바레 십자군'(2010∼2015) 3부작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이슬람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바라캇컨템포러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샤키의 개인전은 이들 작업이 나오기 이전 2000년대 비디오 작업들을 소개하는 자리다.
초기 비디오 작업인 '텔레마치' 연작을 비롯한 전시작에는 이집트에서 태어났지만 1970년대 원유 산업 부흥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던 개인사와 중동의 역사가 반영돼 있다.
지난달 27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당시는 농경사회였던 이집트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현대화 물결에 동참하던 시기"라면서 "우리 가정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했고 이 경험이 정말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텔레마치' 연작(2007∼2009) 중 '텔레마치 사다트'는 1981년 TV로 생중계되는 열병식 중 벌어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사다트 대통령과 그의 암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암살 당일의 열병식을 재연했다. 아이들은 군용 차량 대신 당나귀와 낙타와 함께 행진한다. 많은 이집트인에게 큰 충격을 줬고 작가도 어렸을 적 TV에서 봤던 장면을 별다른 주관적 해석을 덧붙이지 않고 되돌아본다.
'텔레마치 교외'는 이집트의 한 시골 마을을 찾은 헤비메탈 밴드의 공연 모습을 담았다. 촬영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던 주민들은 처음 보는 헤비메탈 밴드 공연 모습에 멀뚱하게 반응한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며 작가가 느꼈던 불협화음과 문화의 충돌을 담아낸 작품이다.
영상 작업 '동굴(암스테르담)'은 일종의 '자화상'이다. 영상에서 작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슈퍼마켓 안에서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 중 카호프의 장(동굴의 장)을 암송하며 걷는다. 세속적인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슈퍼마켓에서 종교적 내용을 암송하는 모습이 묘한 불안감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2006년 작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품 '알 아크사 공원'에서는 이슬람과 유대교, 기독교에서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예루살렘의 건축물 '바위의 돔'이 위아래로 계속 미끄러지며 회전하는 모습을 무한대로 보여준다. 끝을 모른 채 계속되는 중동의 분쟁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하나의 쇼가 끝이 없이 반복되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아랍권 국가 간의 분쟁을 상징하기도 한다"면서 "내가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고 이 지역의 분쟁이 작품을 제작한 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과도 연계돼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시작에서) 다뤄지고 있는 사건들은 오래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현재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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