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우손갤러리 개인전…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아카이브 영상도 소개
(대구=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895년 창설됐지만 한국은 100년이 지난 뒤인 1995년에야 국가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첫 국가관 전시에는 곽훈, 김인겸, 윤형근, 전수천이 한국을 대표해 베네치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이 중 조각가 김인겸(1945∼2018)은 이듬해인 1996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의 초청으로 파리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10여년을 머무르며 작업했다.
파리로 건너간 이후 달라진 김인겸의 작업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 '조각된 종이, 접힌 조각'이 6일부터 대구 봉산동 우손갤러리에서 열린다.
양감(덩어리.mass)이 있는 작업을 하던 그에게 파리 생활은 여러모로 제약이 많았다. 작업실 크기도 작았고 재료를 구하는 것도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여의찮았다. 이런 제약 속에서 그가 떠올린 것은 어디서든 접하기 쉬운 종이였다.
"내가 말하는 이곳에서의 작품 활동이란, 곧 다른 사회에 적응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작품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작가에게 보다 큰 신축성과 유연성, 그리고 개별성을 요구하게 된다. (중략) 내 경우 이것은 우선 손쉬운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려운 것부터 배워온 우리들에게 더욱 필요한 체험이다. (중략) 요즘 나는 물감도 접고, 종이도 접고, 철판도 접는다. 그리고 공간을 만든다. 빈 공간을, 마음도 한쯤 접어놓고 텅 비어진 기분이다."(1997년 작가 노트 중)
이미 한국에서도 종이로 조각 작업의 작은 모형(마케트.maquette)을 만들곤 했던 작가는 종이를 가져다가 접고 붙여보고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스퀴즈(밀대)에 먹물을 묻혀 종이 위에 여러 차례 밀어냄으로써 투명하면서도 겹치는 방식으로 공간감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조각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런 실험은 이후 양감이 중심이 되는 전통적인 조각 어법에서 탈피해 면(面)을 강조한 2000년대 '빈 공간'(Emptiness)이나 말년의 '스페이스-리스'(Space-Less) 연작으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접기'라는 조형 방식이 두드러지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2004년 작 '빈 공간'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반원이나 렌즈 모양을 만들었지만, 작품 안쪽을 들여다보면 빛을 모두 흡수하는 블랙 미러가 적용돼 입체감이 사라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장 벽에는 종이를 접듯이 철판을 접은 조각들이 걸렸다. 대형 조각들 역시 기다란 종이를 접고 찢은 형태다. 스퀴즈를 이용해 종이에 먹물이나 아크릴 물감을 여러 차례 밀어내 공간감을 만든 작업도 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출품작과 1992년 문예진흥원미술관(현재 아르코미술관) 전시작의 영상과 아카이브도 함께 소개한다. 작가가 제작한 베네치아 비엔날레 영상에는 리모델링이 진행된 현재와는 다른 개관 당시 한국관의 모습이 기록돼 있다.
이번 전시는 2005년 대구 시공갤러리 개인전 이후 20년 만에 대구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으로, 그의 딸인 김재도 미술비평가(홍익대 초빙교수)가 기획했다.
김재도 비평가는 "면은 그 자체로 서 있을 수 없지만 '접기'라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접어서 펴면 설 수 있게 된다"면서 "면을 둥글게 말거나 접고, 또 찢어서 다시 접거나 하면 입체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자신이 면을 가지고 입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면서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조형의 세계는 복잡한 데 있지 않고 그런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4월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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