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니 동명 음악영화 원작…무대 위에서 감상하는 사전공연 눈길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사과주스에 화이트 와인 한잔이요?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26일 저녁 뮤지컬 '원스'(Once)가 열린 서울 코엑스 아티움 무대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펍으로 변신했다.
무대는 손때가 묻은 의자와 칠이 벗겨진 벽, 곳곳에 녹이 슬어있는 거울까지 푸근한 동네 주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발굽 모양으로 무대에 늘어선 관객들 틈바구니에 자리하고 있으니 무대 뒤편에서 누군가 목을 푸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곧 저마다 악기를 손에 든 배우들이 무대 중앙에 등장해 연주를 시작하자 공연 전부터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손에 음료를 든 관객들은 경쾌한 현악기 선율에 맞춰 리듬을 탔고, 연주자가 쿵쿵 발을 구르는 진동을 고스란히 느꼈다.
관객들은 서로 다른 성별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음악만 있다면 교감할 수 있다는 '원스'의 메시지를 공연 전부터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뮤지컬 '원스'는 2007년 존 카니 감독의 동명 음악영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음악가의 길을 포기하려던 아일랜드 출신 남자 기타리스트 '가이'가 우연히 만난 체코 출신 이민자 여성 '걸'과 노래로 소통하며 꿈을 되찾는 내용을 그린다.
공연 시작 전 20분간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음료를 즐기며 배우들의 프리쇼(사전 공연)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객들이 무대에서 내려간 뒤에도 프리쇼가 이어지다 남자 주인공이 노래를 시작하면 객석이 암전되며 자연스럽게 본공연이 펼쳐진다.
작품은 별다른 갈등 없이 두 남녀가 노래를 부르며 가까워지고, 주변 사람들과 밴드를 꾸려 남자의 자작곡을 녹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타 뮤지컬 작품이 앞세우는 군무나 화려한 무대 연출도 없다.
눈을 사로잡는 요소는 무대 곳곳에서 배우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끊임없이 주고받는 시선이다. 인물들은 지휘자 없이 눈짓만으로 화음을 맞추고 안무를 소화하며 별다른 대사나 춤 없이도 교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널리 알려진 넘버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에서는 피아노 반주로 시작해 기타, 바이올린, 첼로 등 층층이 쌓이는 화음을 감상할 수 있다. 10여명의 배우가 아카펠라를 선보이는 넘버 '골드'(Gold)에서 호흡이 두드러진다.
배우들이 빚어낸 앙상블은 작년 4월부터 개인 연습과 합주를 거듭하며 1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한 결실이다.
김문정 협력 음악감독은 지난달 26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아카펠라를 녹음한 것인지 묻는 리뷰를 봤을 때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뻤다"며 "연습 과정에서 한순간도 조용한 때가 없었다. 밥 먹을 때는 악기 소리를 내지 말자고 약속까지 했다"며 웃었다.
체코 출신 이민자라는 걸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한국어 대사에 외국인의 억양을 적용한 점도 몰입감을 더한다. 걸이 자신을 어색하게 대하는 가이를 보며 "지구촌 한 가족이에요"라고 능청스레 다가가는 대목은 웃음을 유발한다.
걸을 연기한 배우 이예은은 프레스콜에서 "체코어를 구사하며 진정성을 담아내고 싶었다"며 "가볍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예민한 작업이기도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말투가 걸의 매력을 살려주는 것 같아 재밌다"고 말했다.
작품은 2012년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돼 최우수 뮤지컬상 등 토니상 8개 부문을 손에 넣었다. 국내에서는 2014년 초연했다. 이듬해 내한 공연 이후 10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가이 역에는 윤형렬, 이층주, 한승윤이 출연하며 걸 역은 박지연과 이예은이 맡았다.
지난달 19일 개막한 '원스'는 5월 31일까지 이어진다.
cjs@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