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백한구름 작가] 2인전을 했다. 전시 제목은 ‘빛의 이면Two Sides of Light’. 빛으로 탐구한 시간 감각이 주제다. 대학 동기인 미현 언니와 함께 전시를 기획했다. 우리는 서로의 대학 생활을 알았고, 졸업 전시의 아쉬움을 같이 겪었다. 이젠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나는 첫 번째 개인전을 통해 졸전의 아쉬움을 풀었더라도 미현 언니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이번 전시는 우리 두 사람의 한풀이였다. 나에게도 ‘빛의 이면’이 나를 붙잡던 대학과 이별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었던 것 같다. 학부 시절과 이후 1년간 만들었던 작업은 전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신작과 새로운 도전이었던 독립 출판물을 전시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 속에서 평가를 주고받는 과정을 빛의 성질에 비유한 ‘빨강과 보라의 바깥’, ‘이미 지나간 일’, ‘글그림’, ‘스테인리스 블레이드’, ‘스터디1,2’는 기존에 있던 연작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연작에 포함되는 신작을 보여줄 수 있었다.
신작의 제목은 ‘Have Fun(Fluo)’이다. 기존 작업이 평가를 주고받는 과정의 괴로움과 트라우마를 다뤘다면, ‘Have Fun(Fluo)’은 평가를 주고받는 과정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를 주된 정서로 다뤘다. 사람을 만나서 느끼는 신선한 자극을 형광색으로 표현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이해와 즐거움을 상징하려고 했다. ‘Fluo’라는 단어의 뜻은 ‘형광’이다. 리플렛에 적은 작품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람에 대한 평가를 빛의 성질에 비유했다. 직선으로 오는 빛은 칼날 같다. 빛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이며 동시에 하얗다. 호 모양의 흰색 날카로운 무지개를 그렸다. 펼쳐진 칼날 아래, 물이 담긴 유리컵 안에는 면도날이 잠겨있다. 물에 의해 왜곡된 면도날과 굴절된 면도날, 두 가지 모두 실제의 면도날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자 회화는 자외선에 의해 바랬다. 빨간색이 사라지고 청록색만이 남았다. 녹슬지 않는다고 쓰인 스테인리스 면도날은 이미 녹슬었다.
이번 신작 ‘Have Fun(Fluo)’은 처음 만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평가를 주고받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사람과 경험을 쌓는 필연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겪는 신선한 자극을 형광색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Fluo pink와 Fluo Red 중 당신에게 더 진한 색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책 ‘숲의 정령’은 이번 연작의 ‘글그림Draw-write’에서 시작된 독립 출판물이다. 러시아계 미국인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의 단편 소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글에서 흐르는 검은 잉크만을 사용해 그린 장면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정령과 ‘나’의 대화를 통해 결국 시간이라는 아름다움을 가리킨다.’
2024년 12월에 독립 출판을 했다. 제목은 ‘숲의 정령’. 기존 소설의 출판과 전시용 저작권을 사서 드로잉을 더 해 하나의 책과 전시를 만들었다. 2022년, 처음 읽었을 때부터 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방법을 고민하던 중 2021년에 한강에서 먹물펜으로만 사생 드로잉을 하러 돌아다니다가 한강이라는 주제가 너무 흔하다고 생각해 그만뒀던 경험을 떠올렸다. 더군다나 책을 만들려고 계획한 2024년 당시 나는 ‘글그림’이라는 작업을 한 후 글과 그림이 서로 경계 없이 연결된다는 주제를 곱씹고 있었다. 세 가지의 경험을 합쳐 검은 잉크로 글과 그림을 연결한다는 내용의 책을 구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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