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트럼프식 '미치광이 전략'의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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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트럼프식 '미치광이 전략'의 노림수

비즈니스플러스 2025-02-19 10:00: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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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1970년에 나온 소피아 로렌 주연의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에는 우크라이나 폴타바 지역의 광대한 해바라기밭이 등장한다. 

소피아 로렌은 2차 대전에 출전해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살아있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소련을 찾아가는 여정을 절절하게 연기했다. 

지금은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 자체가 드물겠지만 당시 서울에서 개봉할 때는 상당한 흥행을 과시했다. 그때만 해도 반공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할 때인데 적대국가이자 뿔달린 괴물들이 득시글거릴 것으로 상상되는 소련 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 대평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흥행에 한줄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영화 속 소련 풍경은 그 어느 유럽 국가들 모습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여 관객들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고 정부 당국은 불편함을 느꼈다.   

2022년 2월 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전세계 식용유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2022년 4월 6일자 보도에 따르면 세계 해바라기유 가격은 전쟁 발발 두달 만에 전년 동기 대비 44% 급등했다.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유의 주요 생산국으로 세계 수출의 47%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소피아 로렌이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을 찾아간 우크라이나 해바라기밭이 수십년 뒤 또 다른 전화(戰禍)로 생지옥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잃어버린 군인들을 안타까워 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여인들이 불타고 있는 해바라기밭을 넋놓고 지켜봐야 하는 풍경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음을....

◇'바이든 민주당'을 네오콘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우크라이나를 경제식민지로 삼겠다는 트럼프의 확장정책 

"이제부터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우선 한마디 하고 싶다. 군산 복합체는 이번 전쟁을 마치 슈퍼빌런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히틀러처럼 유럽을 가로질러 진군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귀한 노력인 것처럼 만화책 같은 설명을 제공했지만 사실 우크라이나는 미국 네오콘들의 미국 글로벌 패권 야망에서 출발한 지정학적 투쟁에서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흔히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좌파들의 외침처럼 들리는 이같은 주장은 다름 아닌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장관의 연설문 내용이다. 

우리에게는 간단하게 '백신음모론자'로만 알려진 케네디 주니어 장관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를 선언한 뒤 수많은 공화당원들 앞에서 이렇게 파격적인 주장을 거침없이 내놓았고 어쨌든 그는 트럼프의 인정을 받아 이제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에 등극한 것이다. 

폭스TV의 유튜브 채널에 올려진 케네디 주니어의 트럼프 지지 연설 동영상은 수백만 건의 클릭수를 보여줬고 댓글만 해도 1만 건을 넘겼다.

그는 아예 우크라이나 전쟁은 2014년에 시작됐다면서 당시 미국 기관들은 우크라이나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키고, 친서방 정부를 세워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들을 상대로 수많은 인명 희생을 초래한 내전을 일으켰다고 파격적인 주장을 이어갔다.

최근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을 앞두고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의 발언이 서유럽에 또다른 파장을 일으켰다.

헤그세스 장관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되찾겠다는 목표는 '비현실적'이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요구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평화 유지 역할은 미국이 아닌 유럽 군대가 맡아야 한다고 덧붙였는데 트럼프 진영에서는 더 나아가 "만약 미군이 우크라이나에 주둔한다면 우크라이나 희토류의 절반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지금까지 미국으로부터 받은 지원의 대가로 5000억달러(약 720조원)을 갚으라"고 요구한다는 폭로기사를 내보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를 경제적 식민지로 삼겠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해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세계의 공분을 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가자지구 해법 등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미국 일방주의 외교 전략을 구사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전략은 원래 공화당 출신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사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력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동맹국을 더욱 결속시키고, 적국을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파격을 넘어서는 트럼프의 외교전략을 단순히 미치광이 전략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소외시키면서 러시아와의 직접 담판으로 전쟁을 끝내려는 트럼프 진영의 전략을 케네디 주니어 장관의 주장처럼 단순히 '민주당식 네오콘'과의 절연으로 해석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트럼프는 집권 이후 미국 민주당 내 숨은 세력인 군산복합체 '네오콘'보다 훨씬 진일보한 대외 확장정책을 거침없이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정책을 추진하는 트럼프 진영 내부에는 앞에 언급한 것처럼 백신음모론자이자 네오콘 비판자인 케네디 주니어 장관부터 독일 극우정당을 거침없이 지지하는 일론 머스크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어 말 그대로 예측불가능한 '미치광이 전략'이 전세계를 혼돈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다. 

◇푸틴의 책사 알렉산드르 두긴을 존경하는 MAGA세력의 대외정책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정부'에 기반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기존 국제질서와 전통적 보수주의 모두에 비판적이며, 러시아 이념가들과 오히려 공통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책사로 알려진 러시아의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이 MAGA 지지층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강력한 권력자 일론 머스크에 이어  J.D. 밴스 미국 부통령까지 나서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을 지지하고 나선 배경을 찾아나서야 한다. 

밴스 부통령은 최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해 "민주주의는 민심이 중요하다는 신성한 원칙에 기반한다. 방화벽의 자리는 없다"며 AfD를 배척하는 독일 정치권을 비판했다. 여기서 밴스가 언급한 방화벽이란 AfD와 어떤 경우에도 협력하지 않는다는 독일 연방의회 원내정당의 원칙이자 금기를 가리킨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AfD가 나치 지지자들임을 강조하고 "민주주의, 선거, 민주적 의견 형성 과정에서 외부인이 이 정당을 위해 간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독일 극우정당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인연은 훨씬 이전인 코로나 시국까지 올라간다. 

코로나가 한참 극성이었던 2020년에 독일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개됐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서 3만8000여명의 시위대가 모였는데 독일 내 반이민 극우단체 '페기다'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독일은 물론 유럽 일대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린 경찰 당국은 당시 '페기다'는 물론 '큐어넌'(QAnon)이라고 불리는 극우 음모론 집단이 대규모로 시위에 참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일부 극우 시위대는 "우리는 나치와 함께 행진하고 있다"고 외치기도 했다.

'큐어넌'이라고 하면 친(親) 트럼프 행보로 유명한 미국의 극우단체가 아니던가. '큐어넌'은 미국 민주당 주요인사들이 미성년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한다는 '피자게이트' 등을 퍼트리는 등 온갖 음모론의 진원지인데 그런 단체가 독일 극우단체 '페기다'와 뜻을 같이 했다고? 기이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이 이처럼 복잡해지니 폴리티코 기사에서 언급된 알렉산드르 두긴에 대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푸틴이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러시아 극우 사상가 두긴에 대해 서방에서는 푸틴의 라스푸틴이라고 지칭한다. 라스푸틴은 제정 러시아 말기에 등장해 제정러시아의 몰락을 재촉한 괴승(怪僧)이었다.

두긴은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유행했던 '신(新)유라시아주의'를 다시 주도하고 있는 핵심 인물이다.

그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구 중심의 '범대서양주의'(Atlanticism)에 맞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신(新)유라시아주의'(Neo-Eurasianism)를 주창하면서 러시아가 바로 그 중심에 있다고 강조한다.

두긴은 1997년 이같은 주장을 담은 '지정학의 기초 :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러시아군 장교 교육 과정의 교과서로도 채택됐다.

두긴이 내세운 대독일 전략은 파격적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독일이 중부 및 동부 유럽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하고, 독일에 대한 러시아의 유화적 제스처의 상징으로 현재 러시아의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를 독일에게 돌려주면서 모스크바-베를린 동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을 대서양주의 세력권에서 떼어내야 러시아의 신유라시아 구상의 실현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두긴은 이같은 목적을 위해 독일이 러시아의 천연자원에 완전 종속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 그렇게 됐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영국과 프랑스로 대변되는 서부유럽을 유럽에서 분리시키려는 러시아와 독일 극우정당이 연결이 되고 여기에 다시 트럼프 진영의 연결이 이어지는 아주 기이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독일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가짜뉴스를 지속적으로 양산해왔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정부가 나치의 후계자라고 침공 이유를 밝혔던 러시아가 독일의 친나치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모습에서 작금의 세계정세가 얼마나 모순적으로 흐르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단 이들간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면 '반(反)이민정책'이라는 단순한 스펙트럼 이상의 복잡한 분석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정부'에 기반을 둔다는 점은 분명하다. 

스탈린 시절 소련이 전세계 영구혁명론을 주장한 트로츠키 노선을 반혁명적이라고 비난하고 '일국 사회주의'를 주장하면서 소련만이 유일한 사회주의 모국임을 강조한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오로지 미국만을 위한 '일국 자본주의'를 주장하고 있음이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베트남, 걸프 전쟁 등을 거치면서 미국이 이른바 서방자본주의 진영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등 약소국을 다루는 트럼프 진영의 미국과 러시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이먼 앤 가펑클이 'El Condor Pasa'(If I Could)라는 제목으로 1970년에 발표한 노래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못이 될 바엔 차라리 망치가 되겠어요)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우크라이나처럼 못이 될 것인지, 아니면 망치로 역할을 뒤집을 것인지 갈림길에 서있음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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