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빚 갚으려 선수 계좌 손댔다”
1700만 달러, 엔으로 26억·원으로 246억 규모
판사 “신뢰 관계 파괴, 금액도 충격적” 중형 선고
[포인트경제]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활약 중인 오타니 쇼헤이(大谷 翔平) 선수의 전담 통역사로 일했던 미즈하라 잇페이(水原 一平) 피고가 거액의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지방법원은 현지시간 6일, 은행사기와 허위 납세 신고 등으로 기소된 미즈하라 피고에게 징역 4년 9개월의 형기를 명령하고, 오타니 선수에게 약 1700만 달러(한화 약 246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사건은 미즈하라 피고가 오타니 선수의 개인 계좌에서 무단으로 자금을 빼내 불법 송금했다는 사실이 발단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미즈하라 피고는 지난해 3월, 팀 일정으로 한국 서울을 방문하던 도중 불법도박 빚을 갚기 위해 선수 계좌 정보를 악용했고, 이를 통해 약 1700만 달러의 거액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미즈하라 피고가 통역사로서 오타니 선수의 업무 전반을 지원하며 절대적인 신뢰를 쌓은 뒤, 그 취약점을 악용했다고 지적했다.
오타니 쇼헤이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줄곧 미즈하라 피고에게 의존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통역사는 선수와 구단 간 의사소통에 그치지 않고, 선수의 일상생활 전반을 돕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민감한 재정 정보에도 접근하기 쉬운 구조다. 검찰 측은 이러한 점을 악용한 범죄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미즈하라 피고는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도박 빚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해명했다. 변호인 역시 오타니 선수에 대한 존경심과 헌신을 언급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형량을 최소 1년 6개월 수준으로 줄여달라는 변호인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당 판사는 1700만 달러라는 거액이 일반인이 평생 벌기 어려운 규모인 점, 신뢰 관계를 깨뜨린 행위가 지닌 중대성을 고려해 중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형량과 함께 부과된 배상금은 오타니 선수에게 1700만 달러, 추가로 미국 국세청(IRS)에 110만 달러 등 총 1800만 달러에 이른다. 법원은 미즈하라 피고가 앞으로 이 거액을 모두 변제해야 한다는 의무를 명확히 하면서, 미즈하라 피고가 과연 이를 어떻게 이행할지 주시할 뜻을 내비쳤다. 형기는 3월 24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며, 향후 4년 9개월에 걸쳐 복역하는 동안 배상금 분할납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될 전망이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일부 매체는 통역사라는 민감한 지위를 노린 계획적인 범행이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고, 사건 사실이 드러나자 팬들 사이에서도 맹렬한 질타가 이어졌다. 일본 NHK는 미즈하라 피고가 지난해 3월 해고된 이후 줄곧 수사 대상이 되었으며, 검찰과 사법 거래를 통해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고 전했다. 아사히 신문 등 주요 언론은 선수와 전담 스태프 간 쌓아 온 신뢰 관계가 와해됐다는 점에 주목하며 사건의 도덕적 파장을 짚었다.
미국에서도 이번 일을 스포츠 업계 내부자 범죄의 전형적인 예시로 분석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통역사나 개인 비서처럼 선수 곁에서 밀접하게 활동하는 이들은 재정 정보나 계약 조건 등 민감한 사항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어, 만일 범죄가 발생하면 그 파급력이 매우 크다는 지적이다. 한 미국 스포츠 애널리스트는 오타니 선수의 이미지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거액을 빼돌렸음에도 형량이 5년 미만인 것이 가벼워 보인다는 현지 팬들의 여론도 동시에 전해졌다.
오타니 쇼헤이는 투타 겸업이라는 독보적 퍼포먼스를 앞세워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뛰어난 기량과 더불어 성실한 태도, 겸손한 자세로도 유명해 팬들의 지지가 두텁다. 그러한 선수가 가장 가까운 스태프에게 큰 금전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주변에 충격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 판결 이후, 미즈하라 피고는 형기가 끝난 뒤 미국에서 추방될 가능성도 높다고 변호인 측이 밝혔다. 미국 이민법상 중범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외국인은 추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즈하라 피고가 복역을 마친 후 일본으로 돌아가더라도 거액의 배상금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 후속 절차가 쉽게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바라보는 일본 내 시선은 크게 두 갈래다. 오타니 선수의 시즌 준비에 악영향이 이어지지 않도록 신속히 대체 통역사와 전문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이번 기회에 스포츠 스타 주변을 관리하는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선수들이 거액의 연봉과 광고 수익을 올리는 만큼, 가까운 곳에서 선수와 함께 일하는 인력에 대한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스포츠 스타가 받는 업무 부담과 긴 이동 시간을 고려할 때, 신뢰할 수 있는 보좌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일수록 통역, 에이전트, 트레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곁에 두어야 하는데, 이러한 구조가 때로는 범죄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모니터링 시스템과 재정 자문 서비스를 통해 불법 행위를 예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편 오타니 쇼헤이는 이번 판결에 대한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피해자로서 법정에서 요구되는 절차를 성실히 밟을 것으로 보이며, 구단 측 역시 선수 개인의 사생활 문제인 만큼 구체적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개막을 앞둔 시점에 발생한 통역사 범죄는 오타니 쇼헤이의 경기력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간 보여온 집중력과 회복력이 이내 발휘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선수가 신뢰하던 측근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사례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도 선수 주변 인물이 재정 문제로 기소돼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통역사가 직접적으로 거액을 횡령한 사건은 매우 드물지만, 선수들의 금전관리를 담당하거나 긴밀하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언론에 보도되어 왔다.
이번 사건처럼 선수 개인 계좌에 접근할 수 있는 내부자가 존재한다면, 피해 규모가 적지 않은 것은 물론 선수 본인의 명성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미국 프로스포츠 전반에서는 ‘내부자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져 왔고, 일부 선수들은 에이전트나 재정 자문가를 잘못 둬서 거액을 손해 보는 사례를 겪기도 했다. 비록 메이저리그 내에서 통역사 직위를 악용한 동일 사건은 거의 없지만, 선수의 재정적·사생활적 부분에 깊숙이 관여하는 위치일수록 유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는 해외 출신 스타 플레이어가 증가하며 통역사, 전문 매니저, 트레이너 등 각종 스태프가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언어 장벽과 현지 문화 차이를 극복하려면 통역사나 현지 코디네이터에게 의존해야 하고, 이들이 선수의 금융 업무까지 대행하는 경우도 잦다. 이런 구조는 선수 입장에서는 편리하지만, 한편으로는 범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과거 일부 팀에서는 선수와 긴밀하게 일하던 개인 매니저가 대리 송금 업무 도중 금액을 부풀려 이득을 취했거나, 대리 계약 과정에서 사문서를 조작해 선수를 속인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다. 메이저리그가 이처럼 점점 세계화되고 다국적 인재가 유입되는 상황에서, 선수 보호와 투명한 회계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비위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 산업 전반에서 내부 감시 체계의 허점을 드러낸 계기가 됐다. 오타니 쇼헤이 같은 슈퍼스타조차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선수들의 재정 관리 방식과 주변 인물의 검증 절차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단순한 재발 방지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포인트경제 도쿄 특파원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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