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국정브리핑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경제성 부족으로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첫 탐사시추 결과 가스 징후를 포착했으나 개발할 수준은 아니라고 5일 발표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동해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현재 가치로 따지면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에 달한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윤 대통령 발표 직후 탐사작업을 담당한 액트지오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야권을 중심으로 탐사 반대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결국 액트지오의 배만 불려준 꼴이 됐다. 액트지오에 용역비로 40억원 가량이 지급됐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해 야당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정부와 여당을 향해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여당은 나머지 시추 작업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맞섰다.
정부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 1차 시추 결과 '경제성' 낙제점
산업통상자원부는 6일 동해 심해 가스전 유망구조인 '대왕고래'에서 처음 진행된 탐사시추 결과 가스 징후가 일부 포착됐지만 경제성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석유공사는 물리탐사 자료 분석을 통해 '대왕고래'를 비롯한 동해 7개 유망구조에서 최대 140억배럴의 가스·석유가 매장됐을 수 있다고 보고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직접 대국민 회견을 통해 관련 사실을 발표하며 '산유국'의 꿈을 키웠다.
이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소추에 따른 직무 정지에도 1차 시추는 작년 12월 20일부터 지난 4일까지 47일간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번 탐사시추에서 대왕고래 구조에 석유·가스가 생성되는 근원암, 이를 담는 저류층, 덮개암 등 '석유 시스템(구조)'이 양호하게 존재하는 것은 확인했으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탄화수소가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가스전 사업은 경제성(실제 가치 있는 석유·가스가 있는지)이 있더라도 채산성(파내는 비용 대비 이익이 나는 정도)이 확인돼야 개발이 가능한데 대왕고래 구조는 첫 경제성 평가에서도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탐사시추 작업을 진행했던 웨스트 카펠라호는 지난 4일 작업을 마치고 5일 한국을 떠났다.
이번 첫 시추 비용은 약 1000억원이 소요됐으며 이는 석유공사가 전액 충당한다. 정부는 남은 6개 유망 구조에는 해외 기업의 투자 유치를 받아서 탐사시추를 진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 유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사업초기 '액트지오 신뢰성' 논란.. 총선패배 국면 전환용이었나
사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발표 직후 적지 않은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먼저, 동해 심해가스전 가능성을 제기한 '액트지오'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글로벌 자원개발기업 '우드사이드'가 이미 대왕고래 유망 구조를 검토했다가 철수한 상황에서 사실상 1인 기업인 '액트지오'의 분석 결과를 근거로 발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윤 대통령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 기업'이라고 말한 액트지오의 본사 주소가 미국 주택가로 나오며 '페이퍼 컴퍼니'라는 의문도 제기됐다.
액트지오 아브레우 박사가 윤 대통령 발표 이틀 만에 한국으로 들어와 기자회견을 여는 등 해명에 나섰으나 그에 대한 의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에 야당은 지난해 예산안 심의를 통해 정부안에서 505억원이었던 '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에서 497억원을 삭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석유공사는 액트지오에 40억원 가량의 용역비를 지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시추 결과가 아닌 탐사 단계에서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한 것을 두고 총선패배로 인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함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윤 대통령이 특정 정책 현안을 주제로 국정브리핑에 나선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며 동해안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발표한 뒤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일정을 위해 4분 만에 자리를 떠났고, 질문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신 받았다. 그 과정에서 안 장관은 "동해 석유·가스전의 매장 가치가 현시점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4월 총선 패배 이후 국정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윤 대통령이 대왕고래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기대하며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산자부 고위 관계자는 6일 관련 결과를 발표하면서 "1차 발표는 저희가 생각하지 못한 '정무적인 영향'이 개입되는 과정에서 장관님께서 비유로 든 것 자체가 많이 부각됐다"며 정치적 이유가 작용했다고 말했다.
野 "헛된 꿈으로 국민 농락" "원점 재검토해야"
발표 당시 부터 논란이 된 대왕고래 프로젝트 결과가 발표되자 야권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박경미 민주당 대변인은 6일 논평을 통해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실패가 예견됐음에도 정부는 예견된 실패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국민의 혈세를 퍼부었다"며 "허술한 검증과 과대 포장된 전망, 그리고 정치적 이벤트로 변질된 석유 개발 사업의 참담한 현실은 온전히 윤석열의 오만과 독선이 부른 결말"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가 국가의 미래가 걸린 '게임 체인저'라며 대대적으로 추진한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호수 위 달그림자'였다"면서 "정부는 1차 시추 실패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낙관론을 앞세워 추가 시추를 강행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국민의힘은 '마귀상어(대왕고래 프로젝트 후속 사업) 추경'까지 들먹이고 있으니 한심하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추가 시추라는 헛된 꿈으로 또다시 국민을 농락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소속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위원들도 6일 입장문을 통해 "예측 가능했던 결과"라며 "이제라도 프로젝트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불통과 무능, 협작은 막대한 국민 세금을 낭비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면서 "정부는 대왕고래 프로젝트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왕고래는 전두환의 국민 사기극인 평화의댐을 연상시킨다. 정권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왜곡과 거짓말이 동원됐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의원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문가도 아닌 대통령이 국무회의 중 나와 약 5분간 대왕고래 사업 석유 시추를 직접 발표하고 질문도 안 받고 그냥 들어갔다"며 "결과적으로 뻥(거짓말)이 됐으니 예산 삭감 잘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 역시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대국민사기극으로 판명났다"며 "4.10 총선에서 심판받은 윤석열이 호들갑을 떨 때부터 알아봤다. 내용을 뜯어보면, 정부가 탐사시추를 승인했다 정도였을 뿐"이라고 질타했다.
與 "나머지 시추 실행해야" "대왕고래, 文 정부때 계획 수립"
반면, 국민의힘은 시추를 더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SBS 라디오에서 "지금 한 번 시추했는데 안 됐다는 것 아닌가"라며 "앞으로 시추를 더 하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이명박(MB) 정부 시절의 '자원 외교' 정책을 예로 들었다.
그는 "MB정부 때 소위 자원 외교라고 해서 희토류를 포함해서 여러 가지 중요 자원을 확보하는 정책을 했는데, 그때 특히 야당을 중심으로 많은 분이 비판하면서 결국 다음 정부에서는 다 팔고 발을 빼고 나온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그 뒤에 그 자원들이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서 오히려 빠져나온 것에 대해서 비판이 있었다"며 "자원과 관련된 부분은 좀 긴 숨을 보고 해야지, 당장 한 번 했는데 안 된다고 해서 바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왕고래 심해가스전 시추 개발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계획을 수립하고 시추에 나서게 됐다. 당초 매장 가능성이 20% 이하 정도로 예상됐다"며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선 자원개발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정책위의장은 "이번 시추탐사 결과에 사기극이니 뭐니 하는 정치적 공격을 자제하고 정부도 용기를 잃지 않고 나머지 동해 심해유전구에 대해 시추탐사 개발 계획을 실행해 국민께 희망을 선사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7일 SBS라디오에서 "이건 윤석열 대통령의 초대형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감사를 하고 수사해야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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