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⑦]자본의 철학을 묻다…80년대 명작 '월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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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⑦]자본의 철학을 묻다…80년대 명작 '월스트리트'

비즈니스플러스 2025-02-03 10:18: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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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IMDb
사진=IMDb

기자는 대학생 시절인 2005년에 영국으로 영어 어학연수를 떠났다. 당시 많은 한국 대학생들이 워킹홀리데이나 어학연수의 형식으로 영어권 국가로 떠났고, 그런 경험이 없으면 대기업 입사원서조차 낼 수 없다는 풍문이 돌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기자가 다니던 영국 시골 어학원의 교실에 설치된 TV가 삼성 제품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 학생들은 "엇? 이 TV는 삼성꺼네. 삼성은 한국 브랜드예요"라며 반가움을 표시했고, 영국 교사들은 "삼성은 일본 브랜드지. 유럽에서는 다 삼성이 일본꺼인 줄 알아"라고 말했었다.

그래도 당시 한국 학생들은 은연 중에 공통적인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의 상징자본을 체감한 것이다.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선진 문화로 여겨지는 유럽에서 인정받을 만큼 성장했다고 느꼈다. 오늘날 돌이켜보면, 현재의 한류가 하루 아침에 땅에서 솟아난 게 아니라 이전부터 켜켜이 쌓아올린 K-브랜드의 단단한 기반 위에 이뤄진 것임을 깨닫게 한다.

최근 기자는 한 강연회에서 유명 대학의 경제학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상징자본과 삼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됐다. 교수님은 강연 중간에 전세계 IT 대기업으로 군림했던 노키아의 몰락을 언급하셨다. 그 교수님 말씀의 요지는, 노키아가 핀란드를 전세계적인 IT강국으로 인식하게 해줬지만, 노키아의 몰락 이후 오히려 특정 대기업에 편중되던 핀란드 경제가 다각화되고 경제 혁신을 일굴 스타트업 생태계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노키아의 몰락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노키아라는 브랜드의 상징자본은 산산히 흩어졌지만 그 결과 핀란드 경제가 건강해지는 '생산적 해체'로 귀결됐다는 주장이다.

우연한 기회로 보게 된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7년작 '월스트리트'에서 예전 영국 어학연수 시절을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작금의 사모펀드 행태가 오버랩됐다.

2000년대 들어서부터 SK, 삼성에 이어 크고작은 한국 기업들이 사모펀드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고려아연 경영권 다툼도 기존 경영권을 가진 최씨 일가에 대해 오랜 동업 관계에 있던 장씨 일가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연합해 경영권을 가져오려고 하면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이는 이미 80년대 후반에 개봉한 미국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등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Rotten Tomatoes
사진=Rotten Tomatoes

이 영화의 줄거리를 보면, 월스트리트의 악명높은 금융가 고든 게코는 경영난에 빠진 항공사 블루스타를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인수해 공중분해하려는 작전 계획을 세운다.

고든 게코를 연기한 마이클 더글라스는 주총 자리에서 블루스타의 경영진들을 회사 돈을 사치스럽게 낭비하는 무능한 존재라며 마구 비난한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스탠리 와이저라는 작가와 공동 시나리오 작업을 했는데, 고든 게코란 인물은 월가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등을 모델로 삼아 창조한 캐릭터라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 버드 폭스는 찰리 쉰이 연기했는데, 버드 폭스는 박누리 감독의 2019년작 '돈'의 주인공역 류준열처럼 돈과 욕망을 선망하며 고든 게코의 자발적인 제자가 됐다가 후회하는 인물이다.

버드 폭스의 아버지는 블루스타의 조합장이었는데, 블루스타를 인수해 없애려는 고든 게코의 악랄한 수법을 간파하고 노조원들과 함께 고든 게코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노조원들은 고든 게코에게 자신들은 절대로 게코의 계획이 성사되도록 용납할 수 없으며 이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사보타지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하여 간신히 회사를 지킨 버드 폭스의 아버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후회하는 버드 폭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남이 만든 것을 무용하게 사고파는 사람이 되지 말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라고. 제조업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고든 게코가 버드 폭스에게 자신은 아무 것도 창조하지 않지만 부를 창출해낸다고 뻐기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실제로 대공황 시기에 주식 브로커로 일했던 자신의 아버지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편 이 장면은 기자가 최근 고민하는 대승적 삶과 소승적 삶 간의 상충을 함축해 보여주고 있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블루스타가 사모펀드의 악랄한 금융가 손아귀에 넘어갈 뻔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든 게코가 주총에서 신랄하게 비난했듯, 경영진들의 해태와 부도덕이 블루스타의 건전성을 갉아먹고 경영난을 초래했을 수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을 행해야 한다는 대승불교적 관점에서 분명 옳지 않은 일이고, 경영진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소승불교적 관점에서는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대중을 위한다는 사모펀드의 행태는 그저 자신의 부를 부당하게 추구하기 위한 구실일 뿐, 위선을 감춘 가면에 불과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물론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사모펀드는 부적절한 경영으로 자금난에 빠진 회사를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노조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앞세워 몽니를 부린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마치 노키아가 해체된 것이 핀란드의 국가 경제 측면에서는 약이 됐다는 노교수의 시각처럼 말이다.

고든 게코도 영화 말미에 자신이 시스템과 정보의 중요성을 가르친 것을 버드 폭스가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영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뜬금없이 불교 이야기를 꺼낸 것이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 영화도 어느 정도 불교와 인연이 있다. 이 영화의 공동 시나리오 작가인 스탠리 와이저는 미국 서로스앤젤레스 샴발라 명상센터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가 불교 명상에 관심을 두다니 의아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불교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290만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1%에 달한다. 특히 '쥬부'(Jewbu)라고 불리는 미국 유대인 불교도들, 즉 유대인이면서 동시에 불교를 믿는 이들의 존재도 주목할 만하다.

자본주의와 금융자본, 산업자본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해보고 싶을 때 보면 좋은 영화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2010년에 이 영화의 후속작인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을 만들었다.

1987년작 '월스트리트' 영화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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