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공기가 시리기보다 상쾌하게 느껴지던 1월의 맑은 날,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를 만났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그는 낯익은 얼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곧 눈을 맞춰왔다. 그가 건넨 명함을 받아 들자 재미있게도 이름과 연락처가 모두 한글로 기입되어 있었다. 한쪽 면은 영어, 반대쪽은 한글인 명함 가운데는 그가 사랑하는 겨울나무가 파란색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날 갤러리에서 작가의 사인회가 열렸다. 카메라를 든 사진 애호가들이 전시장을 채운 현장에서 케나는 온화한 미소를 띤 채 관객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방방곡곡을 누비며 작업을 이어간다는 그는 이번에도 사인회를 마친 뒤 촬영을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미리 보낸 질문에 그는 제주에서 긴 답변을 보내주었다.
‘Chrysler Building, Study 3, New York, New York, USA’, 2006. ©Michael Kenna.
자연을 닮은 건축물
그간 한국에서 그의 전시가 꾸준히 열렸지만, 이번 전시는 건축 사진에 주목한다. 공근혜갤러리에서 2월 15일까지 이어지는 <건축을 넘어>는 그의 건축 사진 가운데 200여 점을 모은 전시다. 작가가 2024년 펴낸 사진집 <Venice. Memories and Traces(베니스. 기억과 흔적)>와 2019년 작 <Beyond Architecture(건축을 넘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갤러리 흰 벽에는 그의 흑백사진이 작은 군락을 이루어 공존한다. 베니스 산마르코 성당,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등 역사적 건축물과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 프리덤 타워 같은 현대의 고층 빌딩이 섞여 있는가 하면, 1970년대 사진과 2020년대 작품이 나란하다. 하지만 피사체가 다를 뿐 그의 시선은 한결같다. 자연을 바라볼 때와 다르지 않다. 양식을 설명하자면 핫셀블라드 중형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흑백사진 속에는 대개 인간이 등장하지 않고, 장노출로 포착한 자연의 궤적이 남아 있다. 흐린 하늘과 넉넉한 여백, 어슴푸레한 빛은 그의 작품을 상징하는 요소다. 하지만 이런저런 테크닉이나 스타일보다는 그의 사진이 남기는 여운을 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적막하지만 외롭지 않고, 신실하지만 종교적이지 않다. 사진 속 여백은 현대인에게 감히 묵상을 허락한다. 덕분에 볕이 잘 드는 갤러리는 비종교인을 위한 성소(聖所)로 변모한다.
이러한 특성은 그의 유년 시절과 연결된다. 영국 중서부의 작은 공업도시 위드너스에서 자란 마이클 케나는 어린 시절 동네의 기차역, 공장, 운하, 교회, 묘지 등을 돌아다니곤 했다. 이때 여러 장소, 빈 공간에 대한 인상이 새겨졌으리라. 또한 성당의 복사로서 세례식, 결혼식, 장례식 등의 의식에 참여했고, 열 살 때 가톨릭 신학교에 입학해 7년간 다녔다. “어린 시절의 종교적 신념이 내면의 단단한 토대를 형성했다. 당시 성당에서 복사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홀로 교회의 공기를 느끼며 제단으로 내려오는 한 줄기 빛을 바라보곤 했다. 내게 그 빛은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상징했다. 그리고 가톨릭 학교에 다닐 때 밤에는 10시간 동안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매일 ‘위대한 침묵’을 경험한 셈이다. 그때의 고요한 체험이 내면의 생각에 귀 기울이도록 이끌었다. 오늘날 모두가 겪는 소셜미디어,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 24시간 내내 방해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말이다.”
그가 담은 빌딩은 거대한 크기와 차가운 소재에도 왜 나무나 산처럼 자연의 일부로 보일까? 자연과 달리 고정된 건축물에는 어떻게 접근하는지 물었다. “대상을 구분하는 편은 아니다. 우주의 모든 것에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다고 여긴다. 물론 인간은 제한된 지각으로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할 뿐이지만. 모든 대상에 존중과 경이를 안고 접근하려 한다. 동시에 촬영하는 모든 피사체에서 인간적 면모를 찾는 편이다. 특히 나무에는 독특하고 고유한 인간적 특성이 있다. 그들이 대답하건 하지 않건 촬영하는 대상과 내면의 대화를 나눈다.” 그는 사진에 담을 풍경과 대상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걷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이 피사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유의 분위기나 뒷이야기가 있는 것에 끌린다. 지난 50년의 커리어를 돌아보자면, 인간이 창조한 구조물과 자연 사이의 연결, 관계, 대조, 심지어 적대감까지 촬영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언제나 단언을 피하는 사려 깊은 작가는 “이 또한 전체를 일반화한 것일 뿐, 작업하는 대상이 모두 이 같은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1 ‘Notre Dame, Study 10, Paris, France’, 2007. ©Michael Kenna. 2 ‘Gondolas, Study 1, Venice, Italy’, 1980. ©Michael Kenna. 3 ‘Flatiron Building, Study 1, New York, New York, USA’, 1976. ©Michael Kenna.
의심에서 비롯되는 것
인터뷰 지면을 위한 촬영은 포토그래퍼 김네오가 함께했다. 마이클 케나의 사진집 <SHINAN(신안)>에 수록된 사진 작업에 동행한 인물이다. 2013년 전남 신안을 비롯해 전국을 돌며 촬영할 때 길잡이 역할로 나섰다고. 김네오 실장에 따르면 케나는 장노출로 사진을 찍되 노출계를 사용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한다. 장노출 촬영을 위해서는 노출값에 맞게 셔터스피드와 조리갯값을 설정해야 하는데,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없는 필름 카메라로는 리스크가 따른다. 결과값에 대한 데이터와 치밀한 계산, 그리고 대담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작업인 셈이다. 이 같은 방식을 확립하기까지 그 역시 실수를 거듭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 성향과 본능을 믿는 법을 배웠다. 나중에는 건강한 불신도 배웠고. 여기에는 ‘의심이 신앙의 핵심’이라는 신학자 폴 틸리히의 말이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의심할 때 비로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분명 예술은 용인되는 답변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질문에 더 가깝다. 정리하자면 촬영할 때 내 결정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장 인상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컷이 오히려 뻔한 경우가 많다. 여전히 아날로그 카메라를 사용하기에 필름에 무엇이 기록될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주제의 잠재력이 고갈될 때까지 실험을 이어가야 하므로, 이 같은 아날로그 방식은 예술 정신을 북돋아준다. 마법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곤 한다. 많은 경우 매력적인 이미지는 ‘베스트컷’이라 예상했던 컷 이전과 이후에 있다. 때로 창의성은 우리가 모든 요소를 통제할 수 없을 때 발현된다.”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까닭은 예술가의 시선이 감상자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술을 믿지 않는다, 나는 예술가를 믿는다”는 뒤샹의 말처럼 아티스트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시선이 예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관점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는 훈련법에 대해 현명한 조언을 할 수 없다고 답하면서도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았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무엇이 영감을 주는지 파악하고, 그것에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거장들을 연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들이 보는 방법을 내 방식으로 삼기 위해 존경하는 많은 사진가의 발자취를 따랐다. 실험 역시 하나의 방법이다. 운 좋게 사진 학교에서 4년을 보냈고, 그곳에서 끊임없이 실수하며 나만의 길을 찾고자 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노력에 달렸다.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는 ‘행운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라고 했고, 파스퇴르는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주어진다’고 했다. ‘행운은 가장 노력하는 자의 편’이라고 나보다 훨씬 현명한 사람이 이미 이야기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노력과 함께 불교의 수행법인 ‘팔정도’를 언급했다. “부처님이 특별히 사진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팔정도’는 사진가들이 모델로 삼을 만한 자세다.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선정이 포함된다.” 바른 생활과 맑은 정신을 예술과 연결 짓는 태도가 많은 이에게 귀감이 되리라.
‘Devil’s Bridge at Night, Torcello, Venice, Italy’, 2021. ©Michael Kenna.
‘Golden Gate Bridge, Study 4, San Francisco, California, USA’, 1990. ©Michael Kenna.
사진, 기록의 숙명
사진가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에 어떤 사진은 역사적 사료가 된다. 비단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은 벌어진다. 마이클 케나는 12년 동안 유럽 전역의 나치 강제수용소를 촬영했고 이를 묶어 책으로 남기기도 했다. “사진가가 보통 프로젝트를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프로젝트가 사진가를 선택한다. 그 예시로, 나는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유럽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나치 강제수용소를 촬영했고 네거티브 필름과 인쇄물, 사용권을 프랑스 문화 단체에 기증했다. 많은 수용소 생존자가 세상을 떠났고, 동시에 수용소를 방문하는 여행자가 늘어나면서 이 작업의 역사적 중요성이 커졌다. 이 프로젝트에 착수한 이유는 없다. 의뢰를 받거나 제안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것을 하라고 말한 어떤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삼척의 ‘솔섬’ 사진 역시 사진가의 의도를 떠나 현실에 영향을 미쳤다. “2005년 강원도 삼척에서 소나무 군락을 촬영했다. 당시에는 그 나무들이 개발에 의해 곧 베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후 내 사진은 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관계 당국을 설득하는 데 활용됐다. 나무를 기록하기 위해 촬영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나무가 내게 영감을 준 것이다. 사진가는 행동의 결과를 알지 못해도 아주 중요한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했지만, 사진이 기록할 필요조차 없다고 믿는다. 시가 사실적이고 묘사적인 산문과 공존할 수 있듯, 창의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사진 역시 다큐멘터리 사진만큼 강렬할 수 있다.”
삶의 선물
사진가 김네오가 전한 일화에 따르면 어시스턴트 없이 홀로 작업하는 케나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다. 그와 함께했을 당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산을 오르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다리다 해 뜨기 직전의 빛을 포착하는 것이 그들의 일과였다. 전 세계를 돌며 직접 발을 움직여 풍경을 담는 사진가인 만큼 강한 체력은 필수일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마라톤을 즐기는 장거리 러너로 유명했다. “건강은 사랑, 그리고 시간과 더불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세 가지의 중요성을 느낀다. 알다시피 러너로서 50번 넘게 마라톤을 완주했다. 안타깝게도 무릎을 다쳐 두 차례 부분 교체 수술을 했지만 성공적이지 않았다. 전체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회복 과정이 사진 여행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계속 미루고 있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사진가인 동시에 회화와 드로잉, 조각에 관심이 많은 미술 애호가이고, 기타 연주와 노래를 즐긴다. 책을 읽거나 오디오북을 듣고 글 쓰는 일도 큰 즐거움이다. 지금은 달리지 못하지만 여전히 긴 산책에서 영감을 얻는다. “과거 장거리를 달리던 시절, 달리기가 병을 낫게 하고, 창의력 문제를 해결하고, 전반적으로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바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부는 환상이었겠지만, 혼자 달리는 동안 기분이 좋아지고 건강해지는 점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지금은 긴 산책을 즐기지만 달리는 것과 같지는 않다.” ‘러닝 전도사’의 유별난 애정을 확인하자 엉뚱하게도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그는 2025년도 바쁘게 보낼 예정이다. 네 번의 전시를 위한 카탈로그 준비와 몇 차례 수술이 계획되어 있다고. 사진 작업 또한 놓칠 수 없다. 시간의 유한함을 절감하는 노장 예술가는 삶에 감사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해가 바뀐 것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바쁘게 지내던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메시지다. “기본적인 계획은 매 순간이 마지막인 양 살아가는 것이다. 시간은 무척 귀하지만 빠르게 흘러간다. 삶의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매일 신비로운 우주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때로 우리는 소중한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 와중에 만난 그의 건축 사진은 자연과 달리 인간이 이룩한 문명은 쇠퇴하고 스러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장노출 사진은 셔터를 찰칵 눌러 한순간을 포착한 사진과는 다르다. 몇 초든 몇 시간이든, 기다림의 시간이 따른다. 여기에 또 한 겹, 네거티브 필름을 현상하기까지 기다림이 쌓인다. 이 지연의 시간 동안 피사체의 의미는 변화한다. 우리는 케나의 프레임 안에서 자동차의 궤적과 사람의 흔적, 바람과 구름의 이동을 감지한다. 한때 인간을 보호했으나 지금은 소실된 건축물을 본다. 또는 인간이 죽고 사라진 후에도 그 자리를 지킬 도시를 바라본다. 동시에 작가의 기다림을 감지한다. 셔터를 누른 뒤 한동안 렌즈 앞의 풍경을 응시했을 그의 시선에 감응한다. 그렇게 마이클 케나의 사진은 그 순간의 시공간으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사진 앞에 서 있는 동안 우리는 적요한 풍경 속에서 그와 함께다.
자료 제공 공근혜갤러리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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