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없이는 치료도 없다” 검사 키트 부족에 의료 현장 ‘초비상’
고령자 집단감염 확산… “인플루엔자로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
국내 2016년 이후 최대 유행… 설 앞두고 ‘예방접종·방역’ 총력
[포인트경제] 일본에서 인플루엔자(독감) 감염이 가파르게 늘며 환자 수가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보이고 있다. 특히 도쿄도(東京都) 타치가와(立川)시에 위치한 한 클리닉에서는 발열 환자가 지난달 말부터 급증해 하루 평균 100명 안팎에 달했는데, 대부분이 인플루엔자였으나 10% 정도는 코로나19로 확인됐다.
다치가와 파크스 클리닉의 쿠스미 에이지(久住英二) 원장/지난 10일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이런 상황 때문에 두 질환을 동시에 판별할 수 있는 검사 키트에 대한 수요가 급등하고 있지만, 공급 예측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현장 의료진의 공통된 고민이다. 해당 클리닉의 쿠스미 에이지(久住英二) 원장은 “진단이 없으면 치료도 없다. 필요한 키트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검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유통업체들은 키트 출하량을 제한하거나 일정 부분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여파로 과거에 비해 원하는 수량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고, 의료 현장에서도 보유 중인 재고를 최대한 활용하거나 다른 제조사의 키트를 긴급 수급해 쓰는 등 여러 방편을 동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작년보다 많은 규모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현재 일부 지역 병·의원에서는 외래 환자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등 부담이 가중된 상태다.
환자수 현행 통계게시 이후 최다/NHK 지난 10일 보도분 갈무리(포인트경제)
고령자 시설의 상황도 심각하다. 도쿄도의 아키루노(あきる野)시의 한 요양시설에서는 지난달부터 입소자와 직원 30명이 집단으로 감염됐고, 이 중 90대 여성 환자 한 명은 상태가 나빠져 입원까지 했다.
시설장은 “코로나19 시기에도 집단감염을 우려해왔지만 인플루엔자로 이렇게 확산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고령자 상당수가 치매나 기저질환을 동반하고 있어, 마스크 착용이나 격리 조치 등 일반적인 예방수칙을 엄격히 지키기 어려운 현실이 집단감염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아직까지 입원 병상에 큰 여유가 있으며, 인플루엔자 치료제 역시 일부 제약사의 일시적 공급 중단에도 불구하고 전체 물량은 충분히 확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외래와 응급실 접수 인원이 크게 늘면서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어,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발열·호흡기 환자 대응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손 위생, 마스크 착용, 실내 환기만으로도 호흡기 바이러스 확산을 상당히 막을 수 있다”며 개인 방역에 힘써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국내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5년 1주차(2024년 12월 19일2025년 1월 4일) 기준 의원급 외래환자 1000명당 인플루엔자 환자가 99.8명으로 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찍었다. 특히 13-18세에서 발생률이 가장 높았고, 그다음으로 7-12세, 19-49세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행 시기 동안 인플루엔자 전파가 거의 없었던 점, 최근 기온이 급락한 뒤 실내 활동이 늘어난 점, 서로 다른 유형(A(H1N1)pdm09, A(H3N2))이 동시에 유행하는 점 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번 유행을 주도하는 A형 바이러스는 백신주와 유사해, 백신 접종 시 중증화를 막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가 발령된 현재, 소아·임신부 등 고위험군은 의심 증상만으로도 항바이러스제 건강보험 급여가 인정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앞선 겨울방학 시기 통계를 고려하면 조만간 정점에 이른 뒤 서서히 감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예방접종과 개인 방역조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장 의료진들은 실제로 고열이나 마비, 어지럼증 등 비전형적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인플루엔자로 판정받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한다. 이화여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남궁인 교수는 “팬데믹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독감에 걸리면 남녀노소가 심한 증상을 호소한다”며 “심야에도 열이 계속 올라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잦다”고 밝혔다. 그는 “그래도 지금 유행하는 것은 예전에 보던 바이러스들이다 보니 몇 주 지나면 조금씩 나아질 것으로 본다”면서도 “일상생활을 전면 중단할 필요는 없지만, 백신 접종과 위생 수칙 준수를 꼭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보건당국 역시 설 명절을 앞두고 인플루엔자·코로나19 동시 유행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발열·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면 재빨리 병·의원을 찾아 검사를 받고,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나 영유아, 임산부 등은 증상이 악화할 경우 신속히 응급실을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외 유입과 귀성객 이동이 겹치는 시기에는 전파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는 만큼, 다중이용시설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자주 씻어 바이러스 확산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가 동시에 유행해 ‘트윈데믹’ 우려가 커졌지만, 각 질환의 정확한 진단과 맞춤형 치료만 가능하다면 중증 환자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고 본다. 요양시설이나 병원 등 감염 취약 시설에서는 면회 제한과 환자 동선 관리, 직원 대상 추가 백신 접종 같은 방역 조치를 지속해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단순한 의심 증상이더라도 고위험군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지나친 공포보다 철저한 대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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