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철학: 노동, 일, 그리고 인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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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철학: 노동, 일, 그리고 인간다움

독서신문 2025-01-13 06:00:00 신고

『밥벌이는 왜 고단한가?』 매일 출퇴근 시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에 올라타면서 떠올리는 생각이 제목으로 버젓이 적혀 있어서 눈길이 가는 책이다. 그러나 책은 정작 밥벌이가 왜 고단한지에 관한 고찰보다는 일과 노동관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훑어본다. 어쩌면 밥벌이에 관한 생각의 변천사를 살펴봄으로써 광활한 시공간에 걸친 동지애를 느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대다수 현대인은 어쨌거나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그 와중에 자아를 실현하기도 한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가 흔히 일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노동’, ‘일’, ‘활동’의 세 가지 개념으로 구분한다. ‘노동’은 집안일과 같이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개인적이고 소모적인 행위이고, ‘일’은 개인의 능력을 발휘해 사회에 뭔가를 남기는 보다 창조적인 행위이며, ‘활동’은 정치와 같이 공적인 장에서 자기의 생각을 실현하는 행위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우리의 밥벌이는 적어도 ‘일’이 되어야 덜 고단하게 느껴질 것 같다.

미란다는 30대가 되어서도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친구와 우스꽝스러운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것으로 주변 사람들(특히 엄마)에게 은근한(혹은 대놓고) 무시를 당한다. 미란다가 구직을 위한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미란다는 조금 독특한 인물로, 면접장에서 긴장하면 노래를 부르기 일쑤에다 겨우 들어간 직장 상사 앞에서 기이한 행동을 해서 취직은 없던 일이 되고 만다. 장난감 가게를 좀 잘 운영이라도 해보면 좋으련만, 가끔 찾아오는 손님은 내쫓아버리고 크리스마스로 인파가 몰리면 패닉 상태가 되어 손님의 소중한 물건을 포장지로 마구잡이로 감쌀 뿐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영국의 시트콤 <미란다> 이야기다.

영드 <미란다>.

아무튼 미란다가 직업으로 무시를 당하는 모습을 보면 현대에서 노동-일은 인간의 존재 가치와 결부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중세 이후 노동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되어, “무슨 일 하세요?”는 많은 경우 가장 쉽게 그 사람을 가늠하는 질문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시민사회에 뿌리내리면서, 노동은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을 넘어 도덕적 의무처럼 여겨졌다.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게으르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회적 편견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달라진 풍경이긴 하나) ‘제대로 된’ 직업이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무실로 출근해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흔하게 받아들여졌다. 자본주의의 분업 체제에서는 같은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규칙적인 생활을 중요시했기에 우리의 일과는 통일성을 띠게 되고, 이에 벗어난 일과를 영위하는 사람들은 뭔가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소외시킨다.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노동은 기쁨을 주는 활동이었는데 자본주의 생산 체제 아래에서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노동자는 기계 부품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을 통해 노동자가 스스로를 해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현세에서 노동을 좀 더 낫게 만들려고 힘쓴 학자들도 있는데 생시몽, 오언, 푸리에 등이다. 특히 푸리에는 인간의 노동 자체가 가치의 원천이며 기쁨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는데, 확실히 우리가 하는 일에 기쁨의 속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이 고단하기는 하지만, 잘 해냈을 때의 기쁨이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느끼는 즐거움도 있다. 게다가 일로써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 스틸컷.

정신분석가로 일했던 프로이트는 “일하기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라는 뼈아픈 말을 남겼다. 다만 노동에서 운 좋게도 자신의 욕망을 ‘승화시키는’ 길을 찾아낼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노동이 행복에 이르는 길일 일말의 가능성도 남겨 두었다. 매일 일해야 한다면, 어떻게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지,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일을 결부시킬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게 핵심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AI의 등장으로 기존에 인간의 일자리로 여겨지던 많은 것들이 이미 자동화되고 대체되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인간답게 일하는 방법을 잘 궁리해 봐야 하겠다. 우리의 일이 노동을 넘어선 ‘일’이 되려면 말이다.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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